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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 생명을 키워내지 못하는 공허한 추억으로 고통만을 주었다.
또 재생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재생을 요구하는 잔인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곧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작가 자신의 황폐한 개인적
생활을 의미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 있는 황무지는 전쟁의 황폐와 유혈의 황무지
보다도 서구적인 정신적 불모상태, 즉 어떤 소생의 믿음도 인간의
생활에 중요함과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성性은 한갓 쾌락에 지나
지 않으며,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는 비극적 상태
를 말한 것이다. 특히 이 시는 /聖杯의 전설/을 이용하여 20세기 유
럽 문명의 황폐함을 /황무지/에 빗대어 표현한 용어인 것이다. 전체
5부 중 제시된 1부분은 제1부로 , 시인은 죽음과 재생에 중요한 이
미를 부여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에 하필 잔인하다고 한 것은 작고 연약한 씨
앗이 겨울의 꽁꽁 언 땅을 뚫고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
서 추억이나 인간 내면의 욕망이 없이 잠든 겨울철이 오히려 따뜻
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행복했던
과거 독일 생활을 회상한 것이다.
특히 시의 첫머리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용어의 출전은 초
서의 ‘켄터버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의 [희망적인 사월]의 일부
분이다. 생명의 부활을 약속받은 이 찬란한 봄의 계절에, 현대인들
은 죽은 목숨만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잔인한 운명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요, 역설적인 표현이라 할 것이다.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던 이유는 사랑하는 애인
을 잃어버린 그의 황무한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녀의 무덤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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