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4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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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이 본문을 그저 세속 도덕의 연장선상에서 읽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르호보암의 잘못은 노인의 교도를 듣지
않은 것, 곧 어른을 공경하지 않은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참조하고, 연로하고 인생 경험이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의 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본문으로 설교하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항상 어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혹은 ‘우리는 사회생활에서도
항상 우리보다 경험이 많은 노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런 것입니까?
그러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기업의 CEO들은 항상 중역들이 모였을 때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의 뜻대로 경영을 해야 할까요? 요즈음은 나이가 들수록 현실
감각이 떨어져, 나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노인의 소심함보다 젊은이의 패기로 헤쳐 나가야만 일이 더 잘 풀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노인들의
말만을 듣고 모든 일을 결정해야 할까요?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당회나 노회, 혹은 공동 의회나 기타 전도회의 회의가
열렸을 때,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무조건 그 회에서 가장 연장자들의
의견을 따라서만 일을 진행해야 할까요? 만약에 목사님이 나이가 젊고, 장로님들이
나이가 많으면 목사님은 항상 장로님의 의견을 따라 교회 일을 결정해야 합니까?
노회에서는 항상 가장 나이가 많은 목사님들의 의견을 따라 회의가 진행되어야
합니까? 전도회의 회의에서 모든 일의 의사결정권은 가장 연장자인 사람들이 쥐고
있어야 합니까?
만약 이 본문을 가지고 노인들의 교도이기 때문에 들어야 한다고 설교를 한다면,
제가 위에 말씀드린 예들에서 다 이런 식으로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사람도 없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체로 열왕기상 12장의 말씀에 항거하고 있는
것입니까?
본문의 말씀은 이런 것을 주목하여 말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교도를 버리고 젊은이들의 말을 택한 것은 부수적인
역할입니다. 여기에는 더 결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르호보암이 그렇게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본문이 참으로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