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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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벧세메스로 가는 소(삼상 6:12)
소처럼?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삼상 6:12).
일전에 저는 한국 교회의 과거를 대표할 만한 모 목사님과, 한국 교회의 현재를
대표할 만한 모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동시에 이 이야기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두
설교 모두 주제는 같았습니다. ‘우리도 이 소와 같이!’입니다. 도덕적 해석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성경의 등장인물을 따라서 ‘누구누구와 같이!’인데,
여기서는 ‘이 소와 같이!’가 주제였습니다. 소가 주인공이라 본 것입니다. 도덕적
해석은 그 방법에 있어서는 간단합니다. 등장인물(여기서는 소가 주인공이니 ‘인물’은
아니겠군요.)에 그냥 자신을 대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성경 본문을 이렇게
읽어도 되는 것일까요? 이렇게 읽는 것은 분명한 모순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의
주인공도 ‘하나님’이 아닌 ‘소’나 ‘우리 자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궤를 빼앗긴 후, 다시
돌려받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궤가 가는 곳마다 재앙을
내리셨으므로 도저히 견디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은 이 궤를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재앙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인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확인하기를 원합니다(9절). 그것을 알 수 있는 방편으로 이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궤를 새 수레에다 담고, 금독종과 금쥐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함께 실은 후,
젖이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이 수레를 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미 소는
송아지와 격리되었으므로 본성에 따라 송아지에게로 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소들이 송아지를 떼어 놓은 어미 소임에도 불구하고 큰 길로
똑바로 가서 벧세메스에 도달한다면 우리에게 임한 재앙은 여호와가 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만난 재앙은 우연이다.’소들은 놓여졌고, 이 소들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12절)습니다. 즉 이 모든 재앙은 하나님이 행한 일이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소처럼!’으로 읽을 때 그들이 말하는 주제는 이렇습니다. ‘여기
벧세메스로 가는 소가 있다. 이 소는 송아지를 거느린 소였지만, 법궤를 운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