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8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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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다. 이 소는 송아지에게 가고자 하는 큰 욕망이
있었으므로 길을 가는 도중 내내 울었지만 치우치지 아니하고 자신의 길을 가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자신의 몸을 드려 번제물이 되었다. 이 얼마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바친 성도의 모범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런 해석은 간단하고 쉬워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동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설교를 들으면, ‘한낱 미물인 소도 저렇게 하나님께
헌신했는데,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겠는가!’라는 마음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이렇게 읽어 버리면, 본문에서 중요하게 나타나야만 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기를 원하셨던 주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도덕적 해석의 무서움은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의 의도로 덮어 버리는 데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분명코 살아 계신다!’는 점을
보여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읽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땅 속에 파묻어 버리고, ‘나는 어떻게 살까?’를 깨닫습니다.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도덕적 해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하여 제일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점은
‘소가 헌신했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소가 헌신했습니까? 소는 단지
사람들에게 끌려와 강제로 수레를 멨을 뿐입니다. 소가 ‘하나님의 사명을 향한
거룩한 열정’으로 불타올랐을 리도 만무하고, 이 일을 맡은 것도 하고 싶어서 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소가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소를
주인공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소가 ‘자식들도 떼어 놓고’, ‘사명의 길을 바로
가면서’, ‘나중에는 자기 몸까지 헌신’했다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 중
아무것도 자의로 행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 사람들이 강제로 행한 것이지 소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의 헌신은 ‘억지로’ 해야 하는 것입니까? 뿐만
아니라 아마도 소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소가
이에 대해 판단력을 가졌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까? 사실 이런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소가 행하고 있는 일의 불법성입니다. 이스라엘의
법에 의하면 법궤는 사람이 어깨로 져서 운반해야지 수레 등에다 실어서 옮기면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