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8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P. 358

그분이  왕이시고  우리가  그분의  시종입니다.  이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피조물로  지어졌을  뿐입니다.  놀랍고도  흥감한

               아들됨의  신분을  선물로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감히  요구하면서  “당신이

               내게  맞춰  주어야  하는  것이오.”라고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이유를  성경이  무엇이라  가르치고  있습니까?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다는  것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의  머리  꼭대기에  서려  합니다.  이것은
               불경입니다.  우리는  항상  은혜로  그의  자녀되었다는  것(정확히  말하자면  “양자”된

               것입니다.)을  잊지  말고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떼를  쓰면”  하나님이  그것을
               들어주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  황당한  생각입니다.  물론  자녀된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실지  마실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입니다.  설령  이렇게  떼를  쓰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필요에
               의해,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  그것을  들어주셨을  뿐이지,  의무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하나님!  이것은  전적으로  들어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의  이  말씀은  “강청하는  기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오용되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습니다(눅  18:2).  이  재판장에게  한  과부가  찾아가서  자신의  청탁을

               이야기합니다(3절).  이  재판장은  이  과부의  사연을  듣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눅  18:4~5).


                   결국  이  과부는  “떼쓰는”  방법으로  비슷하게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런  점들이
               우리네  말씀  해석과  설교에도  적용됩니다.  “재판장이  귀찮아서라도  들어주었듯이
   353   354   355   356   357   358   359   360   361   362   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