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9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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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하나님께 죽자 사자 매달리고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면 하나님이
귀찮아서라도 들어주십니다.”라고 합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부분은 성경
전체의 주제요 주요 교리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틀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이 본문 안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잘못인 것일까요?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대답을 알기 위해 전문적이고 어려운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자연스럽게 읽으면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바로
알기 위해 두 가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첫 번째 사실은 “특정 주제에 관한 기도를 전체 주제로 확대시키는 오류”에 관한
것입니다.
이 비유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본문을
오용하기 때문이지 본문을 바로 읽어서가 아닙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비유의 내용을 “기도의 모든 주제에 관한 것”으로 쉽사리
연결시킵니다. 하나님께 떼를 쓰면 된다고 일상의 모든 기도들에 접목시킵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성도의 삶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답인가요? 특정
주제에 관한 대답인가요? 말씀을 제대로 읽기만 해도 이 비유는 한 가지 주제에
관한 것이지 결코 사람의 전체 일상과 관련된 주제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
주제가 무엇입니까? 살펴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그
의의를 설명한 7절을 보십시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 18:7).
이 비유는 모든 일상에 관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고 있는
억울한 고통, 원한에 관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모든 요구들을 내가
다 들어주겠다.”가 아닙니다. “택하신 자들이 원한으로 인해 밤낮 부르짖을 때 내가
결코 그들에게 오래 참지 아니하겠다.”입니다. 즉 고통당하고 있는 자들을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실 이 내용은 비유 안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눅 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