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2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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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자에게 이웃이 되겠느냐?”를 질문하십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구도입니다.
율법사는 자신의 입장에서 “누가 내 이웃이 될 만한가?”를 질문하였지만, 주님은
피해를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며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를 도리어 묻습니다.
주님의 대답 방식은 율법사의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율법사의
질문을 힐난하시는 방식인 것입니다.
그 다음 명령의 말씀도 보십시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이와 같이 하라’는 것은 무엇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사마리아인이 했던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사는 “내 이웃이 어느 정도의 레벨이면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하였지만 주님은 전혀 다르게 답하십니다. “네가 가서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그리고 이 비유에서처럼 율법사들은 “자신들이 땅에서 행한
의에 따라” 하늘에서 자리가 정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잔치가 있을
때 서로 상좌를 차지하려고 다투었습니다(마 23:6 이하; 막 12:39; 눅 14:7 이하, 20:46).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땅에서 폼나게(율법에 비추어 의롭게) 산 사람들을
대우하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사의 질문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말씀의 요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다면, 우리 이웃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인지 정도는 말씀을 해 주셔야죠!
거룩하고 경건한 우리가 저 세리나 창녀 같은 자들과 어울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의로운 우리가 저런 불의한 자들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씀하신 김에 이웃을 어디까지 선 그으면
좋을지 그 정확한 선을 가르쳐 주시죠!
율법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는 “내가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까지 이웃으로
생각해야 할까요?”입니다. 율법사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질문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율법의 진의,곧나님이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그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은 사마리아인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으십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