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4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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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나도 복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학교 기독교 동아리들은 학생회관 건물 같은 층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집회 광고를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는 것으로 해결을 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대학
여기저기에는 각양 모임에 대한 광고들이 붙어 있었고, 저 역시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 학교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한참 대학 기독동아리에서 구속사 성경 공부 모임 등을 만들어 학생들과 성경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을 때, 마침 학생회관 복도를 지나다가 이렇게 씌어 있는
대자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 당신도 아브라함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그때 그 광고가 다른 어떤 기독동아리의 특별집회
광고였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강의였고, “당신도 아브라함이 될 수 있습니다.”가
강의의 제목이었습니다.
오래전 이야기를 들춰 잘잘못을 가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강의 내용이 ‘실제로’ 제가 상상한 대로였는지
아니면 건전한 것이었지만 대자보를 쓰는 학생이 임의로 내용을 곡해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강의 제목의 의미 안에 우리가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있고,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상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부르시면서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추측하기로는 많은 성도들이 “복이 된다”는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기 보다는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본문뿐 아니라 다수의 성경
본문에서도 성도들이 성경을 아주 피상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복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그저 아브라함이 여차여차하여 잘 될
것이다.”라는 식의 모호한 개념만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꼭 집어 말하지는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