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7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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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에  관한  부분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신자라면  누구나  다  사모하고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  장에서  언급한대로  오늘날은  성령에  대한  혼란의  시대이며,  무분별한

               은사  운동과  신비주의로  인해  한국  교회  성도들은  정통  기독교인지  영지주의인지  알
               수  없는  감정적  카타르시스의  성령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한국

               교회  성도의  90퍼센트는  교파나  신앙  색을  막론하고  오순절주의적인  성령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을  이해하되  앞의  글에서  언급하였던  요한복음

               말씀에  나타난  “말씀을  계시해  주시는  성령”으로써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
               감정과  성령의  사역을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성령  충만’이라는  주제도  바르게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  충만은  물론  우리를  열정적이며  뜨겁게  만드는  동인입니다.  제임스
               패커의  『성령을  아는  지식』에  보면  패커는  “(성령을  통하여)  능력을  입는  것은

                                                                                                1)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참된  표지이며  복음의  영광이기도  하다.” 고  하였고,
               “그러므로  신앙을  고백한다  하면서도  이  능력의  힘을  체험하지  못하거나  보여  주지
                                                                                                       2)
               못하는  사람들은  신약의  기준으로  볼  때  무언가  의심해  볼  만한  사람들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통해  능력을  힘입고  자신의  삶에  대해  능동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  성령  역사의  표식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성령론에  대한  이해가  어그러져  있다  보니,  이러한
               삶과의  관련성에  있어서도  성령론이  지나치게  주관주의적,  감정주의적이  되어서

               우리  주변에는  “자기  스스로는  성령  충만하다고  하면서”, “나타나는  행실로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성령  충만이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이  되어  버려서,  실제  그  사람의  본질적인  변화는

               동반되지  아니하고  종교성에서만  두각을  나타냄으로써  “품성은  엉망인데  대단히
               종교적인  체  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성령  충만’에  관한  한  가지  주제를  다룸으로  이  장  전체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성령  충만의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에베소서  5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  “성령  충만의  객관적  요소”  다시  말해  “겉모습,  행위로




               1)   제임스  패커,  『성령을  아는  지식』,  서문강  역  (서울:  새순출판사, 1986), p. 24.

               2)   앞의  글, 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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