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3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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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수련회를 기도원으로 가고, 신비주의적인 경험을 많이 하던
교회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일곱 귀신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보통 이 일곱 귀신의 이야기는 ‘축사’ 곧 귀신을 쫓아내는 이야기와 관련지어져
등장합니다. 혹은 수련회 등을 다녀왔을 때 “너희가 은혜받은 상태는 귀신이 쫓겨
나간 깨끗한 상태인데, 여기서 방심하면 오히려 일곱 귀신이 들어와서 점령하게
된다.”는 식의 약간은 협박조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들려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가르침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사람의 속에 어떻게 귀신이 들어올 수 있지?” 게다가 “한
번 정결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죄 씻음을 받았다는 뜻일텐데,
그건 분명 좋은 일인데, 어떻게 그게 더 많은 귀신이 들어올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지?”, “속사람이 깨끗하고 정결하게 되면 귀신 일곱이 들어올 가능성이 생기는
거라면, 차라리 정결케 되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나?” 이런 종류의 갖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의문은 성경 공부를 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이 일곱
귀신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위와 같은 해석은 본문의 문맥에 충실치 않은 성경
해석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 주는 좋은 전형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나타나 있는 이 귀신 이야기가 “정말 사람의 속에 들어간
귀신에 관한 가르침”인지, 아니면 다른 것에 관한 가르침인지는 명확한 말로 힌트가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의 제일 마지막을 이렇게 마치십니다.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왜 귀신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이 이렇게 끝납니까? 이 말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이야기가 “어떤 사람의 내면 상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세대의 결국”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즉, 이 일곱 귀신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의 속에
들어가 있는 귀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이 세대가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전혀 초점이 다른
접근입니다. 만약 이 말씀이 전자에 관한 것이라면, 이 본문은 귀신의 생태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본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가 옳은 것이라면 이 본문은 귀신에
관한 본문으로 읽어서는 안 되고 시대의 표적에 관하여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주님은 이 이야기의 결론을 ‘이 세대’에 관한
것으로 단정 지으셨습니다. 주님의 이러한 결론은 우리로 하여금 이 말씀의
내용들을 귀신의 생태에 관한 것이 아닌 이 세대의 결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