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9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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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주님이 치유하신 것이 보통 “병든
것”과 “귀신 들린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고, 성경을 많이 읽어 보신 분들께서는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축사와 신유는 비슷한 성격을 가질까요? 그것은 우리가 신유에서도
언급하였고, 방금도 제가 말씀드린 내용에서 기인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이
주제를 다시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신약 신학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은
먼 곳에 있는 왕국이나 천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왕권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엄밀히 말하면 지역 개념이 아니니 ‘곳 ’이라고 쓰는 것도
고려할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의 임재”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계신 현실은 하늘이 땅에 내려와 있는 상황입니다. 즉, 주님의
성육신으로 인해 하늘이 땅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당연한 이야기로,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쫓겨나기 시작합니다. 즉 “죄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된 부산물”들이 쫓겨나게 됩니다. 이 쫓겨나는 것들이 바로 죄의 영향력으로
생겨나게 된 ‘질병’과 ‘귀신들’입니다.
저는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구약 성경에 나와 있는 “나병 규례”를 주로
사용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진영 밖으로 나가 따로 살게끔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염을 염려한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거룩’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그들은 진영을 ‘더럽히게’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 밖으로 내 보내되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민 5:2~3).
이 사람들은 일종의 상징으로써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방편이었습니다. 다른 병들은 다 괜찮은데 굳이 나병이 선택된
이유는 나병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죽음의 징후를 보는 병”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병은 산 사람의 피부가 죽은 자들처럼 썩어 들어가는 병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죽음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