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_ 101가지 성경 이야기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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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그런 종류의 본문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소위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의 깊이란, 얄팍한 인본주의적 해석으로서의 ‘나도 이 사람처럼’의
해석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이런 본문을 통해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본문, 즉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에 대한 기사는 그냥 겉으로만
보아서는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이 본문의 마지막 부분 즉, 예수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에 주목합니다. 앞서 많은
본문들에서 보셨겠지만, 이렇게 가 버리면 설교나 해석의 내용은 사실 뻔합니다.
‘우리도 이 여인처럼…….’이겠지요.
사실 오늘날 설교자들의 본문 주해가 이런 방식으로 너무나 도식화되어 있기
때문에, 저나 다른 많은 성도들이 본문이 어딘지를 보고 설교의 제목만 보아도 그
설교가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 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본문 같은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본문을 보고 제목을 보았는데, 그 제목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와 관련되어 있다면, 설교는 백 퍼센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우리도 이 여인과 같은 믿음을 갖자’는 설교입니다. 혹은 같은 설교 내용인데
제목을 좀 더 극적으로 하기 위해서 ‘옷자락만 붙잡아도’라든가,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종류의 제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목을 뭐라 붙인들,
다 같은 맥락의 설교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을 따라 우리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보는 데 조금 익숙해지고, 인본주의적
해석을 피하게 된다면, 이런 해석이 매우 못마땅해집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항상
예수님이며, 또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너무 위인전기식의
해석과 설교가 많습니다. 제가 가장 혐오하는 성경읽기 중의 하나가 ‘인물 중심적
성경읽기’입니다. 주변 기독 서점에 가 보면, ‘인물별 성경 공부’, ‘인물 중심적 성경
공부’ 등과 같은 내용이 부지기수로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설교의 주인공’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서 ‘사람’으로 대치시켜 버립니다. 설교는 항상 우리 주님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설교들을 보면, 주님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항상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디모데처럼 우리도…….’ 온통 위인전기들의 천국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 설교할 수 있다면,
아브라함 링컨이나 케네디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해서 왜 설교를 못하겠습니까?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