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1부. 경전 성서와 세계사 속에 숨겨진 ‘단군조선’의 뿌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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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성실히  공부하였소.  조금도  게으르지  않
            았다오”(실록,  세종  1년  2월  17일).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평소  독서를  너무  좋아한  세종이  잠시  몸이  아팠다.

            이때  부왕(태종)이  환관에게  명해  방  안의  서책을  모두  감췄다.
              그런데  책을  다  치우기가  민망했던지  송나라의  구양수와  소식

            이  주고받은  서간집  [구소수간(歐蘇手簡)]만은  남겨뒀다.  그랬더
            니  왕자는  그  책을  부지런히  읽었단다.  거의  독서광이었던  셈이
            다.  왕이  된  뒤로도  책  읽는  습관은  여전해,  식사  시간에도  상
            옆에  책을  펴놓고  읽었단다.  밤이  깊도록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

            일쑤였다.


            덕분에  왕은  여러  방면에  능통했다.  읽어보지  않은  중국과의  외

            교문서가  없을  정도였다.  기억력까지  뛰어나  “나는  책을  읽고
            나서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종  5년  12
            월  23일,  1423년).  따라서  조  박사의  주장대로라면  훈민정음  창
            제  당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히브리문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어  및  일본어와  함께  3대  문명어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한국어와  중국어  사이에는  한국말에  한자  어휘가  있
            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사성이  거의  없다.  우랄  알타이  어족은
            우랄  어족과  알타이  어족을  함께  일컫는  말로서,  우랄산맥  근처

            의  어족과  알타이산맥  근처의  어족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우
            랄  알타이어족이라  하면  어떠한  공통점에  의해  우랄  어족과  알
            타이  어족이  하나의  어족  관계로  묶일  수  있음을  의미하고,  이

            것은  곧  공통  조상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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