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1부. 경전 성서와 세계사 속에 숨겨진 ‘단군조선’의 뿌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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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하였다(요 8:56).
한국어에는 ‘나아가서’와 ‘나아가스’ : 한국어에는 ‘나아가서’라
는 말이 있다. 가까이 근접하는 의미를 가진다. 히브리어에는
‘나아가스’ שׁ(나아가스/καί προσεγγίσας 나아가서, 신 20:
2)가 있다. ‘다 나타났다’의 ‘다 나타’와 ‘타나타,’ : 한국어에는
‘나타났다’는 말이 있다. 성서에 ‘나타’ ח(나타/나타나고) 기본
형은 문장 중에서 ‘타나타’(타나타아흐/뜨고, 출 29:17)가
있다.
또한 ‘나탄’ ן(나탄)은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
어 ‘나타났다’로 되어 있다. ‘놋’과 ‘놋’ : 한국에서는 ‘놋’이 있
다. 히브리어에서는 ‘놋’ת(놋/놋, 출 30:18)이 있다. ‘내다버
려’와 ‘레다부니’ : 한국말에는 ‘내다버려’가 있다. 물건을 버리
거나 하는 뜻으로 소외시키는 의미인데 히브리어에는 ‘레다부
니’ י(레다푸니/나를 핍박하오니, 버리니, 시 119:86, 161)가
있다. 기본형은 ף(라다프)이다. ‘내다봐’와 ‘내다봐’ : 한국말에
는 앞을 ‘내다봐’라는 말이 있다.
히브리어에서는 ‘내다봐’ ה(네다봐/즐거이 드림, 출 35:29)가
있다. ב(베히테나데브/즐거이 헌신, 삿 5:2)의 경우 앞에
붙는 (베히테)는 모두 문법상 붙은 과거형 (테), (히), 베
(베/하나님 안)일 뿐 ב(나데하/즐거이, 삿 5:2) 본래 언어는 헌
신하는 일이다. 따라서 앞을 내다 보는 일은 헌신에서 이루어
진다. 한국말에는 '나덴다, 왜 그렇게 나데느냐‘가 있다. 곧 ’유
난을 떤다‘이다. 이러한 말과 연결은 하나님께 즐거이 드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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