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5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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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지부조합이 있었지. 세교조합에서 이런 사 원찮고 고장만 나고 그러니까 일본 놈들이 쓰
업을 하겠다는 계획서를 작성해서 융자를 받 다 내버리고 간 거예요. 그래서 조합에서 평화
아 방앗간도 짓고 창고도 지었지. 발동기라고 한국에서 만들기 시작해서 몇 달
후에 서울에서 25만 원 짜리를 사왔지요.
▲ 제일 먼저 구판장을 하고 그 다음에 방앗간,
도정공장 하신 거지요? ▲ 오산에서 세교조합은 그렇게 운영됐고 다른
- 예. 조합은 어떠했나요?
- 내가 알기에는 별로 한 게 없고 그리고, 그
▲ 도정공장 하게 된 이유가 오산까지 가기가 불 후에 얼마 있다가 윤광학이가 죽었지만, 오산
편해서였나요? 1, 2리 협동조합에 사무를 봤어요. 어느 날 나
- 조그만 발동기는 부락에는 있었어요. 그래 를 찾아왔더라고 “방앗간이 어떠냐?”라고 묻
서 도정공장 짓게 된 게 어차피 농사지어서 방 더라고 그래서 “인건비 주고 손해나는 건 없
아를 찧어야 먹으니까, 그 삭(도정대금)을 3개 다. 발동기라도 기름 값하고 인건비 빼고도 수
부락이 찧어서 삭(도정대금) 뜨는 것만 해도 입이 괜찮다.”라고 했지. 오산 1, 2리 방앗간은
충분히 이자를 갚고 하겠다고 해서 짓게 된 동 전기가 들어와서 모터를 사용했어요. 모터도
기에요. 거기서 사업이 커진 거지요. 수원 매교다리에 내가 얘기를 해줘서 50만 원
짜리 전기모터 맞춰서 5만 원 짜리하고 20만
▲ 조합원들한테는 도정료를 싸게 받았나요? 원 짜리하고 맞춰서 방앗간을 했지요.
- 도정료는 일반에 비해서 조금 싸게 받았지요.
▲ 지금 주차장 자리에서요?
▲ 일반 다른 조합원들한테는요? - 예. 주차장 자리, 협동방앗간 그 옆에 논이
- 다른데 방앗간 도정료 받는 것보다는 조금 싸 떡 방앗간
게…. 그때는 다른 데는 벼를 찧어서 (도정료를)
쌀로 계산해서 쌀 두 가마 찧으면 한 말씩받았 ▲ 이동조합이 1962년도에 전국에 설립됐다가
는데, 우리는 (도정료를)벼로 떼 가지고 벼를 갖 1970년도 되면서 농협협동조합으로 통합된 거네
다가 공판 내서 정부에서 융자를 받았지. 요?
- 그렇지 단위조합, 면 단위지요.
▲ 수매를 한 거네요?
- 여럿이 상의를 하니까 동네에 방앗간이 개 ▲ 그 당시 1970년도에는 오산농협사무소가 어
인 게 있었어요. 개인 게 있었는데 기계가 시 디 있었나요? 지금 현재 그 자리인가요?
오산의 이동조합(里洞組合) 역사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