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0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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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리, 지곶리, 서랑리가 합쳐서 세마농협이 되                 1970년대 없어졌는데 그 이유가 뭐죠?
                      는 바람에 커졌지. 정부에서도 지원되고 농촌개                 - 1970년대 초에 단위농협이 된 거지요.

                      발기금이라고 해서 지원이 나와서 한집에 몇 십
                      만 원씩 대출도 하고 그랬지요.                         ▲ 단위농협 되기 전에 6개 마을이 합쳐져 세마
                                                                농협을 만들었다는 거지요?

                      ▲ 처음에 세교리 3리를 합쳐 조합하다가 양산                 - 그렇지요.
                      리, 지곶리, 서랑리와 합쳐지면서 커진 거네요.
                      - 그렇지, 처음에 3개 마을로 할 때는 세교조                ▲ 그 당시 세마농협 조합장이 누구였어요?

                      합으로 하다 6개 마을이 합쳐져 세마농협으로                  - 지곶리하고 세교리에서는 안 한다 해서 지
                      됐지.                                       곶리 최창선 씨라고 돌아가셨지만, 그 분이 조

                                                                합장 했지요
                      ▲ 그러면 그때 명칭이 ‘세마농협’인가요
                      - 예, 세교조합으로 하다가 합쳐서 세마대 명                 ▲ 6개 마을이 합쳐서 세마농협이 됐는데 당시

                      칭을 따서 ‘세마농협’으로 했어요.                       에 어떤 사업을 했나요?
                                                                - 구판장하고 도정공장하고 거기에 창고를 지

                      ▲ 1962년도에 오산에 32개 이동조합이 있다가               어서 창고관리도 하고….































                      세교리 옛길 옆의 창고와 구판장 건물 : 예전에 주민들이 이용했던 길 옆으로 창고와 구판장 건물이 나란히 위치해있다.
                      창고건물 맞은편이 방앗간 자리.



                      328  강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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