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9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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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리, 서랑리를 합쳐서 세마농협간판을 붙였                   ▲ 출자금은 가구당 벼 한 가마니였나요?
                       어요.                                       - 대개 두 가마니를 낸 사람도 있고, 농사 많

                                                                 이 짓는 사람은 더 내고, 반 가마니 내는 사람
                       ▲ 처음에는 세교1리, 2리, 3리가 합쳐서 세교조합             도 있고, 한 가마니 내는 사람도 있고 대중이
                       을 하다가 나중에 3개 마을을 흡수한 거네요.                 없었지요.

                       - 흡수라기보다는 합친 거지요. 서랑리, 지곶
                       리, 양산리를 이렇게 합친 게 세마농협이지요.                 ▲ 이동조합에서는 어떤 사업을 했나요. 예를 들
                                                                 어 대출이라든가?

                       ▲ 서랑리, 지곶리, 양산리를 합친 게 몇 년도쯤               - 처음에는 대출할 게 있어야지요…, 그래서
                       이에요?                                      구판장 만들어서 구판장하고, 도정공장 지어

                       - 그게 1965년도인가? 60년대 중반이에요.                서 도정공장해서 삭(도정대금)을 쌀로 뜨지 않
                                                                 고 벼로 달아서 뗐어요.
                       ▲ 그러면 당시 세교조합의 조합원은 몇 명 정도                벼로 떠서 공판을 청구에 매상을 해요. 그래서

                       되나요?                                      그 자금가지고 운영해서 필요한 사람들이 갖다
                       - 그때 세교리가 1, 2, 3리 합쳐서 110여 명 정           썼는데 그때 대출이라는 게…. 그때 돈이 뭐 있

                       도 될 거예요.                                  어요? 그래서 조금씩 대출을 하고 그러다가 양































                       창고 : 구판장과 사무실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세교조합 창고. 현재도 옛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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