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2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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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지게로 흙 지어다 돋아서 2층 건물을 지 ▲ 그러면 거기도 운영이 잘되었나요?
었지. 홍광표 씨를 조합장으로 세우고 나는 뒤 - 예, 운영이 잘 되다가 (1970년)단위조합이 되
에서 협조했지요. 는 바람에……. (단위농협으로 통합될 때)다른
데는 재산을 하나도 안 가져 왔어요. 오산1리, 2
▲ 그 당시 오산의 32개 이동조합 중에서 세교 리도 방앗간을 안 가져왔어요. 세마농협만 재산
조합이 운영이 잘 된 건가요? 다 가지고…. 그래서 단위조합으로 합쳐져서 조
- 다른 데는 유야무야였지. 이장 집이 간판만 합장을 선출하는데 내가 조합장 선출이 되었어
붙였지 뭐 하는 사업이 없었거든. 그래서 세교 요. 그런데 내가 나이도 어리고 해서 이기정 씨
조합만 하다가 양산리, 서랑리 지곶리를 합쳐 보고 먼저 하시라고 내가 사표를 냈지요. 이기
세마조합이 되는 바람에 제대로 조합구실을 정 씨가 13년 동안 조합장을 하고 65세 정년으
하면서 운영이 된 거에요. 로 그만두는 바람에 내가 조합장을 했죠.
▲ 그런데 다른 지역은 왜 그렇게 안 되었지요? ▲ 이동조합은 전국에 다 생겼잖아요. 오산만 생
세교리는 구판장도 하고 건물도 짓고 했는데 오 긴 게 아니고
산의 32개 조합 중에서 그나마 여기만 제일 잘되 - 그렇지요. 그러다가 단위조합 생기는 바람
었던 거잖아요? 에 전국적으로 읍면 단위로 다 생긴 거지요.
- 그렇지요. 여기만 조합구실을 흉내를 낸 거
지 뭐. ▲ 이동조합이 많이 있었지만, 오산만 보면 초창
기에는 세교조합하고 양산리, 서랑리 지곶리가
▲ 다른 지역은? 합해져서 제대로 운영이 됐고 나머지는 유명무
- 그냥 이장 집이 간판만 붙이고 유야무야지. 실했다는 거네요.
그러다가 그 후에 오산1리와 2리조합이 합쳐 - 그렇지요.
서 방앗간을 했어요.
▲ 세마조합 같은 경우는 조합을 만들어서 구판
▲ 오산 1리와 2리가 합쳐서요? 장을 운영했는데 이익이 남았나요?
- 예, 공동출자해서 도정공장을 했어요. 지금 - 조금씩은 남았지요.
도정공장 자리가 뭐가 됐냐하면 주차장이 되
어 있지, 송영만 씨 집 뒤에 주차장 있잖아요? ▲ 그 당시 생활필수품은 어떤 게 있었지요?
거기가 도정공장 자리에요. 협동방앗간이지 - 학교가 있기 때문에 학용품하고 공동물품으
요. 거기가 1리, 2리 조합방앗간 로 가을이면 김장할 때 소금도 몇 트럭씩 사왔
330 강경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