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3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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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광천이나 덕배에 가서 새우젓도 트럭으로 - 방앗간이 없을 때 오산 시민회관 앞에 방앗
사오고 했지. 간 있었어요. 마차에 벼를 싣고 갔어요.
▲ 김장철에 구판장에서요? ▲ 이동조합에서 구판장을 하면서 도정공장까지
- 조합원한테 주문을 받아서 새우젓 한 독을 운영했으면 그 당시는 규모가 컸겠네요.
사는 사람도 있고, 반 독 사는 사람 있고, 소금 - 그때는 전기가 안 들어오고 발동기였어요.
도 한 짝 사는 사람 있고, 두 짝 사는 사람 있 그래서 서울 연천교 다리에 가서 평화발동기
고 소금도 몇 트럭씩 사왔지. 25만 원 짜리를 맞춰서 그걸 사다가 방앗간을
했지요.
▲ 그 당시 세마조합에 직원은 몇 명이었나요?
- 있었지요. 둘 있었어요. ▲ 그 당시는 전기가 안 들어왔나요?
- 그 후에 들어왔지요.
▲ 유급직원이네요?
- 그때 말로만 유급이지 무료봉사하다시피 했 ▲ 오산에서 제일 먼저 금암리가 전기가 들어왔
었습니다. 홍승균이라고 죽었지만 내 집안 조 다고 하던데요.
카예요. 머리가 좋은 아이인데 대학까지 나오 - 예.
고 농촌운동으로 이 지역을 살리려고 했고, 판
매원으로 지금도 살고 있지만 홍광희라고 둘 ▲ 왜 금암리에 전기가 일찍 들어왔지요?
이 있었어요. - 금암리에 부자가 두 집이 있었잖아요. 전용
태 씨 아버지하고 김덕삼 씨라고 두 양반이 부
▲ 조합장 한 명하고 직원 둘이 있었던 거네요. 자였어요. 그 양반들이 돈을 많이 내는 바람에
- 임원들도 있었지. 전기가 일찍 들어왔어요.
▲ 도정공장 할 정도였으면 직원들이 더 늘어났 ▲ 도정공장 할 때는 발동기로 하다가 언제 전기
겠네요. 방앗간을 하나 더 운영하려면 사람 많이 가 들어온 거에요? 70년대 넘어서?
필요하잖아요. - 그럼요. 단위조합 후에 들어왔지요. 전기는
- 그렇지요. 내가 도정공장 책임자로 하고, 홍 늦게 들어왔어요.
승봉 씨하고 원주봉 씨하고 셋이 있었어요.
▲ 도정공장은 언제까지 운영했나요?
▲ 도정공장 없을 때는 쌀 어디로 찧으러 갔나요? - 도정공장 운영하다 단위조합이 되는 바람에
오산의 이동조합(里洞組合) 역사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