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7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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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있는 곳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 풍수지리에 의하여 서동 앞의 호랭이산의 뿌리가 벌음동을 찌르                                         255
                  고 있는 형국이 남성의 성기처럼 생겼고 벌음동 마을은 여성의 음부를 닮아 마을의 아낙네들이 이 양                                          생활환경

                  기를 차단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숲과 산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음나무를 비롯한 가시
                  가 많은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음나무는 재앙을 예방한다고 하여 농촌 대문 위에 많이                                            /  지명유래

                  걸어 놓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는 팽나무 외에 음나무 10여 그루가 남아 있다. 또한, 벌음동
                  지명 유래에서 마을에 소리가 나면 주민들이 싸우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겨 두레패(풍물)가 없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말이라고 전한다. 실제로 현재 마을에 풍물이 없지만, 광복 전까지는 마을에 두
                  레가 있었고 30여 년 전 당시 마을 어른 중에 서연익 씨와 서연설 씨가 상쇠였으며, 농번기에는 농요

                  와 함께 농악을 신명 나게 놀았고, 가꿀우물가에서 신명 나게 놀았다는 말이 전한다.


                  ■ 초평들(들)

                    벌음동 앞쪽의 들부터 탑동까지의 들판을 부른 이름이다.


                  ■ 수렁배미(들)


                    벌음동 앞쪽에 있는 저수답의 논으로 수렁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괭이논(들)

                    저수답의 밑에 있던 논으로 지금은 서동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생겼으며, 지형이 괭이(농기구 일종)

                  처럼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 초평약수터(약수터)

                    상재산 골짜기 옻우물 근처의 샘으로 물이 차고 물맛이 좋아 초평의 자랑거리 약수라 부르며, 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용한다.


                  ■ 냉천골(골짜기)

                    천남골이라고도 하며, 벌음동에서 동쪽인 탑동으로 넘어가는 골짜기로, 근처에 찬물이 나는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장천동(머을)

                    장지네골 혹은 장천골(長川谷)이라고도 하며, 예전에 마을의 북서쪽 언덕에 있던 개울이었으나, 지
                  금은 없고 앞으로 긴 내가 흘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는 이천 서씨의 묘가 여러 기 있다.



                  ■ 건너말(마을)

                    장천동의 다른 이름으로 마을 건너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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