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2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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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여울 앞 보아지(들)
두곡동 마을 앞의 들판을 탑동에서 부른 말이다.
■ 보아지(들)
보아지는 여러 설이 있다. 일설에는 보물 같은 땅, 즉 물이 풍부하여 농사짓기가 좋은 들이란 뜻이
있으며, 또한 일설에는 보의 아래나 안에 있는 들로 모두가 물이 가까이 있어 농사짓기 편리한 들을
말한다.
■ 가장천(천)
가장리에서부터 흘러내려 온 내천(內川)이라 지어진 이름이다.
■ 돌모루 냇가(천)
흘러온 가장천의 탑동 앞 냇가를 부르는 말이다.
■ 탑동교(다리)
발안과 오산으로 가는 지방도 302호선에서 탑동으로 진입하는 곳의 다리로, 10m의 길이에 폭은
7.3m로 1994년도에 준공되었다.
이외에 탑동에는 내건너, 뒷굴, 장밭들, 모장뿌리, 곤두라니, 바위모퉁이 등의 땅이름이 전해 온다.
제5절 누읍동(樓邑洞)
누읍동은 자연마을의 이름으로 눕새골이라고 한다. 이는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운 와우형(臥牛形)
이라는 데서 기인되어 ‘누운소’가 와전되면서 누읍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즉, 누운소→누은소
→누음소→누음새→누읍새→눕새로 구전되면서 누읍동(樓邑洞)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
각은 다르다. 우선 먼저 지명의 글자 해석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樓邑洞(누읍동)의 글자를 그대로 해
석한다면 읍치가 있던 동이라는 뜻이다. 읍치는 현재의 관공서, 즉 행정치소가 있던 곳으로 해석하
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누읍(樓邑)이 있던 곳이다. 예로부터 읍치가 되려면 보편적으로 세 가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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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 첫째가 행정관아, 둘째가 서당 또는 서원이요, 그리고 셋째가 행궁이
다. 이 세 조건은 서로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 누읍동이 이 세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
제
1 해보자. 현재 이 세 가지 중에서 눈으로 실제 볼 수 있는 곳은 서원(서당)으로 누읍동 인근 궐동의 오
권
산화성궐리사이다. 정조가 칙명으로 사액하기 전에는 공서린이 세운 서원(서당)이었다. 읍루는 누읍
동의 지명에 포함되어 있으며, 즉 현재의 누읍동이며, 행궁은 궐동의 궁(宮)터이다. 이 궁터는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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