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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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중국의 문화권은 서이문화권의 서이계西夷系로 분류하기도 한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은 고인돌인바, 그 성격은 지배층의 경제력과 정치권력 반영이며

                       시대가 흐를수록 무덤의 구조가 지하로 들어가고 여러 개의 받침돌이나 돌무지로 변화하였다
                       고 한다.
                        청동기를 가진 지배 부족은 자신들이 천신天神의 후예임을 내세워 토테미즘을 가지고 있는

                       토착 부족을 다스리기 위해 선민사상을 내세웠다.
                        청동기 시대는 그 전 단계인 신석기시대와는 사회적 구성단위가 많이 달라졌다. 씨족 사회
                       의 구성단위가 정착생활과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 중심의 부족사회로 변모하였다.

                       또한 청동기 문화의 발달로 인한 생산력의 향상은 계급을 발생시켰고 우수한 청동제 무기의
                       출현은 부족 간의 전쟁을 유발하여 새로운 예속관계를 초래했다.

                        청동기의 보급이 북부지방으로부터 전래됨에 따라 한강 이북 지방에서는 강력한 권한을 가
                       진 통치자가 지배하는 부족국가가 탄생, 발생하였으며 청동기의 전래가 상대적으로 늦었던 남
                       부지방은 강력한 부족국가의 출현을 더디게 했다. 이러한 청동기 시대의 사회상을 대변하는

                       것이 고인돌이다.
                        탁자 모양의 북방형 고인돌은 중국 요하 동쪽부터 한반도 중부 이북지방에서 주로 발견되며
                       대개 전망 좋은 언덕에 한두 기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 모양은 고임돌이 크고 높은 것

                       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탁자식 고인돌이다.
                        바둑판형의 남방식 고인돌은 한반도 남부 지방에서 주로 발견되며 야트막한 구릉에 여러 개
                       가 모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 모양은 고임돌이 작고 낮은 것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

                       는 바둑판형 고인돌이다.
                        청동기 전래가 상대적으로 빨랐던 북부지역은 강력한 통치자가 존재하는 선진적인 곳으로

                       많은 인력동원과 경비를 들여 탁자모양 고인돌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지역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위치했던 지역과 일치하고 있어 이러한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남부지방은 청동기의 전래도 늦었고 사회적 변화도 뚜렷하지 않았다. 북부지방과 같

                       이 위협적으로 축조하지 않고 한 곳에 여러 기의 고인돌이 발견된다. 이런 점으로 보아 소수의
                       권력자나 공동체의 일반 성원들이 일종의 품앗이 형태로 고인돌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3. 강화도의 고인돌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황해도 은율군, 경기도 강화군에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강화도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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