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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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다. 동남아에서는 그나마도 수백 기에 지나지 않는 점에 비해 보면 고인돌이 3만여 기에
이르는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가장 조밀한 분포권을 보여주는 고인돌의 전시장인 것이다.
신석기시대까지 인류 사회는 원시공동체 사회였다. 모여 살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을
똑같이 나누어 쓰던 사회로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사람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농업의 발달로
생산물이 증가하면서 자기 것이 생기게 되고 전쟁을 시작하면서 권력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2. 선사문화와 국가 형성
우리나라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의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하
였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생활을 개선해 나갔다. 그리
하여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회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에는 채집과 사냥을 주로
하면서 무리 생활을 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이 시작되었으며, 주로 강가나 해안가에서
움집을 짓고 정찰생활을 하였다. 신석기 시대의 사회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부족사회였으며,
평등 사회였다.
청동기 시대는 BC 10세기경으로 사회적 변화와 전문적 분업 형성, 사유 재산과 계급의 발생
의 시기였다. 이 당시의 유물은 석기, 청동기, 토기, 무덤으로 구분되어지는데 석기에는 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등이 있고, 청동기에는 비파형 동검, 거친무늬 거울, 화살촉 등이 있으며 토
기에는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 토기 등이 있으며 무덤에는 고인돌, 돌무지, 무덤, 돌널무덤이
대표적이다.
청동기 시대의 생활은 생산 경제의 발달로 홈자귀, 반달 돌칼 제작,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가
축사육 증가와 주거지 직사각형의 움집에서 지상 가옥화, 가족 단위의 가옥이 모여 취학 형성
되었으며 사회 변화 남녀의 역할 분화 남성 중심의 경제 활동, 사유 재산세로 계급 분화촉진으
로 군장 사회의 출현과 선민사상, 고인돌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예술의 특징은 예술과 종교의 밀착, 주술 의미의 신앙이었으며 청동제 의기
와 토우는 장식 용도와 주술적 의미를 가졌고 바위그림으로 울주 반구대의 풍성한 수확 기원,
고령 바위그림의 동심원 태양 숭배, 풍요의 기원이 주류를 이루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의 학술 가치로는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 무덤을 들 수 있다. 비파형 동검
은 요녕식 동검이라고도 하며 이 동검은 요령, 길림을 포함한 중국 동북지방에서 한반도 전역
에 걸쳐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와 요령 지방은 같은 청동기 문화권으로 중국과는 구별
되는 문화권임을 알려주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문화권은 동이문화권의 동이계東夷系이
오산시 외삼미동 탁자식 고인돌의 별자리 성혈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