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8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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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경기재인청 사람들
재인청 출신 재인이나 예인의 기록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구한말 협률사나 단성사에서
활동했던 재인들의 명단은 알 수 있었으나 그들의 경력이나 출신 성향 등으로 미뤄볼 때 재인
청 출신이란 근거도 확실하지 않았고, 그들과 관련한 자료 또한 충분하지 않았다. 앞으로 재인
청 실체 규명 못지않게 재인들에 대한 발굴과 기록도 중요하리라 본다.
1. 도당굿 화랭이 이용우
이용우는 1899년 경기도 수원군 청호면 부산리(현 오산시 부산동)에서 전통적인 세습무인
이종하(李鍾河)와 미지(巫女) 사이에 태어났다. 8세 때 부친의 소실 경상도 김해 태생 박금초
(朴錦草)에게 판소리 창을 학습했다. 이때 부친과 소실 박금초가 이끄는 창극단을 따라 전국
을 유랑했다. 명창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 등도 같이 다녔다고 한다. 이 창극단이 13
세에 해산하자 15세까지 통도사에 들어가 독공을 하고, 스님에게 역학을 배웠다. 15~20세에
광무대(光武臺)·단성사(團成社) 등을 따라 평양·함경도 등을 유랑했다. 20세에 고향 경기도
오산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장가를 갔다. 그 무렵 독학으로 대금을 불었다고 한다. 22세 무렵
부터 숙부 이종만에게 6년간 당굿을 배웠다. 29세에 경기도 광주에서 경기도당굿에 입문했다.
30세 무렵 창극단을 따라 부정기적으로 지방에도 다녔으며, 틈틈이 당굿에도 참석했다. 그 때
창극인 임춘앵과 4년 동안 같이 다니기도 했다. 이용우는 만혼을 해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88세인 1987년 5월 6일 경기도 안성의 한 저수지에 낚시를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
했다.
생전에 도당굿을 연행하던 이용우의 모습을 지켜본 김헌선 경기대교수는 “이용우는 ‘터벌림’
‘손님노정기’ ‘군웅노정기’ ‘뒷전’을 직접 집전하던 빼어난 화랭이였다. 터벌림에서 보여준 진쇠
장단, 모리장단에 따른 터벌림춤은 그윽하고 단아한 멋이 있었다. ‘군웅노정기’에서는 변화무
쌍한 장단에 맞춰 마달(문서)을 엮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뒷전에서는 품위 있는 깨낌춤
과 다양한 춤사위, 발림, 마달의 짜임새가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의 뛰어난 재주를 높
게 평가해 누차에 걸친 무형문화재 보고서가 작성되었으나 끝내 문화재 지정은 받지 못했다.
그의 죽음으로 오산의 이용우 예술은 전승이 끊어지게 되었다. 아울러 화랭이패의 전통도 사
라지게 되었다”며 그를 회상한다. (『한국 화랭이 무속의 역사와 원리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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