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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배워왔다는 송파산대놀이가 현재 전승되고 있다. 흔히 애오개·사직골 등에 있었던 원래의 산대 281
놀이를 본산대놀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양주와 송파 등지의 별산대놀이와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산 구비전승
대놀이는 한자말 산대희(山臺戱)에서 유래했는데 산대희는 나례, 중국 사신 환영행사 등에서 설치했
던 ‘산대(山臺)’라는 무대구조물 앞에서 놀았던 연희들을 말한다. 산대희를 놀았던 연희자들 중에서 · 민속
가면극을 만들어내어 산대놀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서울 본산대놀이의 내용은 상좌과장·팔선녀과 · 경기도당굿과
장·노장과장·양반과장(샌님·포도부장과장), 영감·할미과장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내용과 등장
인물들이 오늘날의 양주별산대놀이나 봉산탈춤과 대부분 일치한다. 특히 애오개와 사직골의 본산대
패는 지방 순회공연을 자주 다녔는데, 이것이 각 지방의 가면극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한다. 그리고
경기재인청
조선 후기에 남사당패·대광대패 등의 유랑예인집단이 각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연희를 공
연하면서 흥행을 위해 본산대패의 가면극을 그들의 공연 종목 가운데 하나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은 상업이 발달했던 곳에서 공연된 것들이 많다. 양주에서는 일제강점기에도 / 성씨
난장을 텄을 때 낮에는 줄타기를, 밤에는 양주별산대놀이를 공연했다. 우리나라 가면극의 악사는 원 · 인물
래 예전부터 지역에 따라 무부(巫夫), 재인청의 재인, 악사청의 악사, 농민, 연희자를 겸하고 있는 악
사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산대놀이의 춤사위는 부드럽고 우아하며 섬세한 중부지방의 무용
적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데, 춤사위가 매우 분화되었으며 종류도 다양하다. 산대놀이의 가면
은 황해도 해서탈춤의 가면이나 경상남도 야류·오광대의 가면과 차이를 보인다. 산대놀이 가면은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고 비교적 아기자기하고, 손질이 많이 가해져서 기교가 뛰어나고 다양하며 가
면의 크기가 대부분 비슷하다. 그러나 야류와 오광대의 가면은 선이 굵고 투박하며 생김새가 단순하
면서도 개성이 강하다. 말뚝이가면은 모두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11) 땅재주
땅재주는 연희자가 어릿광대를 대동하고 음악 반주에 맞춰 땅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거나 재주를
넘는 등 신체를 활용하여 다양한 기예를 보여주는 전통연희이다. 땅재주는 지예(地藝)·장기(場技)·
근두·살판·물구나무서기 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지예와 장기는 땅에서 행하는 기예라는 뜻이다.
살판은 송순갑의 말에 따르면 ‘잘하면 살판이요, 못 하면 죽을 판’이란 뜻에서 살판이라는 명칭이 붙
여졌다 한다. 근두는 한·중 두 나라에서 ‘근두(跟斗·筋斗·斤頭)’ 등의 표기로 고르게 나타나는 대
표적인 이칭이다. 땅재주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기본적으로 행하는 걷기·달리기·도약하기·균형
잡기 등의 육체적 기능과 관련이 깊은 공연종목이다. 땅재주는 기초적인 육체기능을 전문공연예술
로 발전시켰으며, 그 기술들은 줄타기·솟대타기·나무다리걷기·무동태우기 등 다양한 전통연희
종목과 결합하여 연행되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땅재주와 관련한 기록인 조선조 ‘문종실록’엔 중
국사신 영접행사와 관련해 나타난다. ‘광대와 서인(서역인)의 주질·농령·근두 등과 같은 규식이
있는 놀이’라고 하여 땅재주가 규식이 있는 연희로서 중국 사신의 영접 시에 광대와 서인이 연행했
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땅재주는 은영연·문희연·삼일유가(三日遊街) 등 과거급제자 행사에서도
연행되었다. 국가에서 주최한 문무급제자 축하연인 은영연에서 연행한 땅재주의 모습은 선조 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