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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줄타기                                                                                      277

                    줄타기는 예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민간 연희 중 하나로 일명 승도(繩渡)·주색(走索)·색상                                           구비전승
                  재(索上才)라 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줄타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

                  다. 대령광대(待令廣大: 궁궐이나 관아에 소속된 광대) 계열의 ‘광대줄타기’와 ‘남사당패’ 등 유랑예                                        · 민속

                  인(流浪藝人)계열의 ‘얼음’이라고도 하는 ‘뜬광대줄타기’다.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연희 장면에 적합                                          · 경기도당굿과
                  한 가요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재담이 다양한 기예와 어우러져 관중의 흥미와 탄성을 자아내는 고
                  난도의 전통연희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줄타기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고려 때 이규보(李

                  奎報·1168~1241)가 오세문(吳世文)의 「삼백운시(三百韻詩)」에 화답한 시다. 여기서는 민간에서 ‘은                                       경기재인청

                  하수에 닿을 정도로 줄을 높이 매달고(戱索高連漢)’ 고난도의 줄타기를 연행했음을 보여준다. 고려시
                  대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나례(儺禮)에서도 각종 연희가 연행되었다. 또한, 중국 사신 영접행사,
                  문희연(聞喜宴), 지방관 환영행사, 사대부가의 잔치 등에서 줄타기가 풍성하게 공연되었다. 이익(李                                           /  성씨

                  瀷·1629~1690)은 『성호사설』을 통해 원래 중국으로부터 한반도에 전래된 줄타기는 수준 높은 쌍줄                                       · 인물

                  타기였고, 당시 조선의 줄타기 역시 매우 뛰어나서 중국 사신들이 찬탄해 마지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될 때 문화사절의 일원으로 줄광대도 파견돼 조선의 줄타기가 일본
                  에 소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희연에서 펼쳐진 전통연희의 연행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대표

                  적인 자료는 송만재(宋晩載·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이다. 관우희는 줄타기의 도입과정, 줄

                  타기의 연행시간, 연행 공간, 관객, 기예, 중놀이, 살판에 대한 내용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
                  다. 조선 후기 감로탱(甘露幀)의 하단부에는 유랑예인집단의 공연 장면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감로
                  탱에 보이는 줄타기는 줄에 밀착된 듯 붙어서 거미와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찬사를 불러올 만큼 매우

                  실감 나고 수준 높은 것이다. 감로탱에는 외줄타기와 쌍줄타기가 함께 나타난다. 이는 우리나라 줄타

                  기의 역사적 전개 양상에 보이는 고유한 특징이다. 남사당패 출신의 이수영(1940~2007)은 쌍줄타기
                  는 솟대쟁이패가 하던 쌍줄백이 솟대타기와는 다른 것으로 자신이 어려서 봤던 쌍줄의 높이는 현재
                  의 줄타기보다 높았고 이를 ‘개고’라고 불렀다고 했다. 조선 후기 들어 줄타기는 줄 아래 어릿광대를

                  두고 재담을 서로 주고받고 삼현육각의 탄탄한 음악 반주에 맞춰 풍성한 기예·재담·가요를 연행할

                  수 있는 ‘판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는 줄타기가 기예 중심의 줄타기를 벗어나 연희 중심의 줄타기
                  로 발전했다는 연희사적 의미를 지닌다. 현재 파악할 수 있는 근현대 줄타기 연희자의 계보 중 최고
                  의 연희자는 김상봉(金上峯)이다. 김상봉은 200여 년 전의 인물로 그에 의해 줄타기가 최상천-김관

                  보-김영철·이동안-김대균으로 이어지게 된다. 20세기 광대줄타기 전승 계보의 중심에는 김관보가

                  우뚝 서 있다. 김관보는 1910~1930년대까지 과천을 본거지로 삼아 세습무 집단 내에서 줄타기를 전
                  수했다. 김관보의 문하에서 김봉업·임상문·이일문·이정업·이생민·이복남·이돌개·오돌끈·
                  이동안·김영철 등 남성 줄광대와 박명옥·임명옥·임명심·전봉선·한농선 같은 여성 줄광대들이

                  배출되었다. 이동안은 재인청의 여러 연희 종목에 능했고 줄타기 기예와 재담에도 뛰어났다. 김영철

                  은 경기도 과천의 세습무계 출신으로 일곱 살 때부터 김관보에게 줄타기를 배웠다. 김영철은 평생 난
                  장, 명창들과의 극장 공연, 유랑극단 공연에서 줄타기를 연행했고 1976년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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