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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장단은 살풀이-살풀이 모리-늦은 굿거리-굿거리-자진 굿거리이다.
(3) 태평무
20세기 초 경기무악장단과 춤사위를 바탕으로 한성준이 무대화한 춤이고 ‘왕꺼리’라고도 한다.
198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됐다. 초연은 1938년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발표에서 이강선
과 장홍심이 추었고, 작품설명에는 태평성대에 질탕한 음악에 맞추어 흥겨운 춤을 추어 일월성신과
더불어 평화를 노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1940년부터 한영숙과 강선영(姜善泳)이 추었는데, 왕과
왕비의 역으로 각각 왕과 왕비의 옷차림이었다. 터벌림까지는 같이 추고 다음은 왕이 의자에 앉고 왕
비가 추었다고 한다. 음악은 낙궁장단-터벌림-올림채-도살풀이가락의 경기무속장단으로 다른 춤
에 비해 복잡하고 까다롭다. 김인호가 이동안에게 전승한 재인청의 태평무는 춤 장단이 무속적 성격
을 갖고 있다. 춤사위는 춤꾼의 다양한 발디딤과 세밀한 팔놀림을 강조한다. 담백하면서도 무겁고 몸
의 중심이 바위같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듯하면서도 자유롭다. 하체에서 나오는 힘이나 기가 팔,
손끝, 한삼을 거쳐 무한으로 뻗어나가면서 춤사위가 하나로 움직이는 한삼놀이 테크닉이 어렵고 까
다롭다. 춤복으로는 남색 관복에 바지저고리를 입는다. 무구는 관모·각대·목화·망건·탕관·한
삼을 착용한다.
(4) 승무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독무(獨舞)로, 한국무용 특유
의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정수가 잘 표현되어 민속무용 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
를 받는다. 무원(舞員)의 복장은 대개 날렵하게 걷어 올린 남색 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삼을 걸쳤고
머리에는 흰 고깔을, 어깨에는 붉은 가사를 입었으며 양손에는 북채를 든다. 연원은 현재 크게 두 가
지 설로 나뉘는데 그 첫째가 불교의식과 연관시킨 불교의식 무용설이다. 세존께서 영취산(靈鷲山)에
서 법화경을 설할 때 천사색(天四色)의 채화(綵花)를 내리시니, 가섭(迦葉)이 이를 알아차리고 빙긋이
웃으며 춤을 추었다고 하여 후세 승려들이 이를 모방하였다는 설이다. 또한, 중국 위(魏)나라의 조자
건(曹子建)이 연못가에서 노는 고기떼의 모양을 본떠지었다는 설도 있다. 둘째는 민속무용으로서의
유래설로 황진이가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유혹하려고 춘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 상좌승이 스승이 나
간 틈을 타서 평상시 스승이 하는 기거(起居) 범절과 독경설법(讀經說法)의 모습을 흉내 낸 동작에서
유래한다는 설, 파계승이 번뇌를 잊으려고 북을 두드리며 추기 시작한 춤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오산시사
그러나 현재 불교의식무용 중 법고(法鼓)춤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승무의 아름다움은 정
면을 등지고 양팔을 서서히 무겁게 올릴 때 생기는 유연한 능선 및 긴 장삼을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제 뿌리치는 춤사위와 하늘을 향하여 길게 솟구치는 장삼자락 등이 볼 만하다. 그리고 비스듬히 내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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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법(步法)이며 미끄러지는 듯 내딛다가 날듯 하는 세련미는 거추장스런 긴 장삼을 더 할 수 없이 가
볍게 만들어준다. 재인청 승무는 북 장단을 두드린 뒤에 장삼과 고깔을 고이 벗어 북틀 위에 올려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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