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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일제강점기 오산인의 생활상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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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경식 | 오산학연구소 상임위원                                                · 유물







                    우리나라 개항 이후 근대 민족운동은 반외세·반봉건의 성격으로 전개되었다. 오산지역에 있어서
                  민중들의 동향은 반외세·반봉건의 민족운동과 계몽운동, 의병전쟁으로 진전되었고 민족국가수립이

                  좌절되자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의 성격을 띤 교육운동, 사회운동, 청년운동 등으로 계승되었다.
                    대한제국 말기와 대한제국 패망 전후 가장 바쁘게 그 시대의 역사를 만들어간 지역은 오산지역이

                  라 생각된다. 19세기 초반 오산지역이 포함된 화성부에는 굶주리는 사람 13만 명이 발생하며 조선사
                  회는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헌종은 화성부에 유망민들의 환곡 7백 석을 탕감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두
                  차례에 걸쳐 수원 민란이 있었다. 민란은 관아의 군수 등 관리들의 수탈에 신음하던 민중들이 부패한

                  봉건정치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민란에서 용기를 얻은 민중세력
                  들은 동학농민군으로 결집되었다. 김정현·안승관 등은 수원의 동학세력을 이끌고 1893년 보은 장대

                  리 취회에 참석하였고 수원관아를 점령하였으며, 봉건지배층은 일본군대의 출동으로 동학세력을 물
                  리칠 수 있었다.

                    일제의 군사개입으로 패퇴한 동학농민군은 화성 남양만·대부도 등지에서 활빈당 활동을 전개하
                  였고, 러·일전쟁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침탈이 시작되자 의병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오산지역의 동학

                  농민군 세력은 나라와 사회를 반봉건·반침략의 방향으로 변혁하려 하다가 정부군과 야합한 일본군
                  의 근대적 무기에 의하여 실패로 끝났으나, 1896년 수원 근방의 농민으로 구성된 농민군과 의병진은

                  세력을 연합하여 수원을 점령하였다. 수원에 속했던 오산지역에서의 의병들의 항일전은 1909년까지
                  지속되었다.

                    일제는 1900년 오산에 나타나 경부선 철도용지매수를 시작하였다. 오산지역에서는 30명의 논, 밭,
                  산의 소유자들이 토지를 수탈당하였다. 청호면 오산촌에서는 10명이 각기 논과 밭과 산을, 어탄면 독

                  동에서는 논을 빼앗긴 자가 6명, 밭을 수탈당한 자가 3명, 궐동에서도 논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사
                  람이 있었다.

                    용지매수과정에 나타난 분쟁사항에 관한 오산관련자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철도용지는 수매방식
                  을 취하였고, 대부분의 토지소유자들의 저항과 반대에 직면하였다. 일제는 1902년 말까지 오산지역

                  까지 공사를 진행하였고, 러일전쟁이 임박하자 군사상 필요에 따라 공사를 서둘러 강행하였다.
                    1904년 경부철도 각 정거장 내에는 우체사무와 전기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905년 1월 경부선이 개

                  통되자 오산역은 근대화의 상징이면서 일제침략의 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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