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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갈곶동 유적(葛串洞 遺蹟)
중앙문화재연구원이 2005년도에 실시한 갈곶동 704번지 일원의 한솔아파트 건설부지에 대한 구
제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오산천변의 평야지대에 해당하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
49기와 21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 유구는 돌널무덤 1기, 움무덤 1기 등이 있다. 돌널무덤은 대부분 멸실되었고, 출토된 유물
이 없으나 벽의 축조수법 등을 통해 보았을 때 오산 가장동 유적 등에서 확인된 고려시대 돌널무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움무덤은 길이 2.4m, 너비 0.8m, 잔존 깊이 0.5m 정도이며, 무덤의 하단부
는 거의 멸실되었다. 내부에서 청자 병·완, 고려백자 접시 등이 출토되었는데, 청자 완의 경우 도면
을 통해 보았을 때 ‘청자 양각 연판문 발’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해당 무덤은 고려시대 중
기인 12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궐동 유적(闕洞 遺蹟)
중앙문화재연구원이 2009~2011년에 걸쳐 실시한 궐동·금암동 일원의 오산 세교2지구 택지개발
사업부지에 대한 구제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석산(해발 135.3m)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들이 분포하고, 이들 사이의 곡간부에 농경지가 위치하고 있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구 252기가 조사되었으며, 71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유구로는 집터와 움무덤이 확인되었다. 집터는 1기가 확인되었는데, 내부에
서 온돌시설이 확인되었다. 할석을 이용해 고래를 축조하였으며, 아궁이는 삭평되어 남아있지 않았
다. 잔존하는 규모는 남-북 2.92m, 동-서 2.1m, 최대깊이 약 0.2m 정도이다. 남벽에 인접한 바닥
에서 청자접시가 1점 출토되었는데, 고려 중기에 제작된 지방청자로 시기는 12세기 중반 이후로 보고
있다.
움무덤은 대부분 5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총 19기가 확인되었다. 무덤 내부에는 바닥의 중간에
구덩이를 파서 마련한 요갱(腰坑)이 위치한다. 출토유물은 청동발·청동병·청동거울·청동숟가
락·젓가락·동전 등의 청동유물과 철제가위, 불명철기 등의 철기, 도기병, 청자류가 출토되었다. 유
물은 13세기 후반~14세기 후반경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5. 금동관음보살입상(金銅觀音菩薩立像) 출토지
오산시사 1965년 6월 7일 최창남 씨에 의해 금동관음보살입상이 발견되어 신고된 곳으로 신고 당시의 지번
은 화성군 오산읍 지곶리 산 219번지였으며, 현재 지번은 지곳동 219-19번지 일원이다. 유물은 경작
지 개간 과정에서 출토되었다고 하였는데, 현재도 밭으로 사용되고 있고 정확한 출토 위치는 알 수
제
2 없다. 출토된 보살상은 당초무늬가 투각된 화관을 쓰고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수인(手
권
印)은 통인(通印)이다. 뒷면 허리와 하체 부분에 광배를 부착하였던 2개의 돌기가 상하로 배치되어
있으나, 광배와 대좌는 없어지고 몸체만 남아있다. 양식상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제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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