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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 조성되었는데, 서쪽의 A구역은 요사채로, 동쪽 B구역은 불전과
회랑,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구역의 북쪽에는 28m에 이르는 축대가 확인되었다. A구역에 위
치한 두 기의 건물지는 모두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1호는 남향, 2호는 1호 건물의 남쪽에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1호 건물 내부에는 ‘ㄱ’자형의 구들이 확인되었으며, 1호와 2호에 걸쳐 후대에 만들어
진 3호의 경우 구들시설만 확인되었다. 1호 건물지 남단에는 계단이 위치한다.
B구역 건물은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로 배치되었으며, 안쪽은 중정으로 보인다. 불전에 해당하는 1
호는 북쪽, 2·3호는 동·서쪽, 4호는 남쪽에 위치한다. 불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크지 않은 편
인데, 불단은 불전 내 서쪽에 설치되어 동쪽을 향하였다. 이와 같은 불단 배치 양상은 영주 부석사 무
량수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서쪽이 극락정토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 불단에 아미타불을 안치했을 것
으로 추정된다. 2·3호는 회랑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에는 승려들이 거주하는 생활공간이나 의례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4호는 유일하게 정면 5칸인데, 남쪽 회랑이거나 강당지로 추정되며, 5호는 용
도나 형태를 알 수 없고 A-2호 남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아 A구역 건물이 만들어진 이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사찰 내부에서는 상급에 가까운 청자와 고려백자, 중국백자 접시편, 청동접시, 청동소탑, 벼루, 철
솥 등 격이 높은 유물들과 함께 다량의 기와와 철제 낫, 못, 도기류가 출토되었다. 자기류의 기종은
발과 접시가 다수이고 대접, 잔, 종지, 병, 뚜껑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사찰의 생활용기임을 알
수 있으며, 그중 해무리굽 백자 완은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반 용인 서리 가마터에서 생산된 것으
로 추정되고, 청자는 12세기에 전남 강진, 전북 부안 생산품으로 보인다. B-1호 건물지에서 청동소탑
일부와 함께 귀목문 암·수막새,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어 불전 건물의 위상을 보여준다. 출토유물을
통해 보았을 때 이 사찰은 고려 초기 창건되어 그 이후로 오랜 기간동안 오산지역 신앙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산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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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그림 3. 지곶동 유적 ① 2지점 고려시대 건물지 전경 및 청동소탑(기호문화재연구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