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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장동 유적(佳長洞 遺蹟) ② 415
역사
서경문화재연구원이 2009~2011년도에 실시한 가장동 394-1번지(가장산업서북로 40-2) 일원의
오산가장2일반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구제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석산(해발 135.3m)의 정상 / 유적
부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노적봉(해발 160.3m)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만나는 · 유물
지점의 곡간부 및 능선부를 포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유구는 신석기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 261기가 조사되었으며, 약 1,17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유구는 9개 지점 중 8개 지점에서 확인되었는데, 집터 3기, 도기가마 2기, 공방지 1기, 목
탄가마 2기, 움무덤 약 137기, 회무덤 33기 등이다. 도기가마는 6지점 하단부에서 2기와 함께 도기
를 제작한 공방지가 확인되었는데, 가마 내부에서는 동이·호·병 등이 출토되었다. 길이는 1호는 약
6.5m, 2호는 약 16.5m 정도이다. 전체적인 구조나 형태, 출토유물 등을 통해 보았을 때 18~19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최근 용인 고매동, 안성 산정리 등 유적에서 대규모 도기가마 및 공방지가 조사된
바 있는데, 오산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오산에서 소비되는 기물(器物)
이 지역 내에서 생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묘의 경우 움무덤과 회무덤이 확인되었다. 움무덤은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한 가장동 유적
에서 출토된 예와 동일한데, 1단으로 굴광한 후 벽감, 충진토 등이 시설된 무덤과 2단으로 굴광한 것
이 모두 확인되었다. 1단 굴광 무덤의 경우 출토된 백자 등을 통해 보았을 때 15~17세기에 걸쳐 조성
되었으며, 2단 굴광 무덤은 회무덤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형태로 17세기 이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
지 긴 시간동안 조성되었다. 5-7지점 9호 무덤에서는 근대 일본동전 1점이 출토되었다. 주목되는 것
은 7지점 1, 2호 회무덤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조선시대 복식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7지점 1호
회무덤은 길이 2.8m, 너비 1.6m, 깊이 1.4m 정도로 굴광한 후 목재를 결구하여 삼물을 다져쌓고, 굳
은 후에 목관을 안치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바닥 전면에는 한지 안에 숯을 넣어 팩의 형태로 만든
후 이를 빼곡하게 펴놓았다. 목관 위에는 현훈(玄纁, 장사를 지낼 시 산신 혹은 지신에게 바치는 적·
흑색의 폐백) 2점이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 ‘의인여흥이씨지구(宜人驪興李氏之柩)’라고 적인 명정(銘
旌, 사자의 관직과 성씨 등을 적은 기), 관을 덮은 구의(柩衣)가 확인되었다. 무덤의 북동쪽에서는 머
리카락과 빗, 뒤꽂이를 종이로 감싸서 놓았다. 회뚜껑 바로 위에 조성된 감실에서는 뚜껑이 있는 백
자 호 1점이 출토되었다. 2호 회무덤 또한 비슷한 형태로 확인되었는데, 명정에 ‘유인구성이씨지구
(孺人駒城李氏之柩)’이라 기록되어 있었다. 여흥이씨의 무덤에서는 다량의 복식이 출토되었는데, 목
판깃의 저고리 형태와 액주음포(腋注音袍), 철릭(帖裏)의 상하비례 및 주름의 형태, 치마의 유형, 저
주지(楮注紙)를 넣는 구성을 통해 보았을 때 조선 전기의 복식형태를 보인다. 또한 관 내부에서 자수
바늘집이 출토되었고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당시 여인의 머리양식이 잘 남아 있었다. 구성 이씨의 무
덤에서도 미라가 확인되었는데, 여성의 단령(團領), 화려한 직금단의 장저고리, 연화동자문의 스란
(치맛단에 금박을 박아 선을 두른 것)이 있는 치마 등 복식사적으로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