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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것으로 구분되며, 구릉을 기준으로 능선 정상부와 사면의 단차가 확인된다. 즉, 산을 계단식으로 413
삭토하여 평탄면을 조성하고 각 단별로 집터 및 저장구덩이 등이 들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역사
현상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오산 부산동 유적(한양문화재연구원)에서도 확인되는데, 향후 조선시 / 유적
대 마을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유물은 자기류와 토·도기류, 기와류 등 총 159점이 출토되었다. 그중 유적의 조성 시점을 알 수 있 · 유물
는 것은 자기류이다. 분청자는 상감·인화·조화기법이 확인되었으며, 문양은 원권문, 포도알문, 화
문, 육각문, 초문 등이 시문되었다. 분청자의 중심시기는 대체적으로 15세기로 볼 수 있다. 백자는 굽
의 형태와 유약의 사용 정도, 저부의 묵서, 번조받침 재료 등을 통해 보았을 때 15~16세기, 17~18세
기에 사용된 백자가 모두 출토되었다. 그중 이른 시기의 유물이 집터와 폐기장, 일부 구덩이에서 출
토된 점으로 보았을 때 가마뫼골 마을이 형성되고 사람이 살았던 시점은 조선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15~16세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유적 내에서 수습된 유물 중 상평통보를 포함한 17~18세기 유물과
근대의 백자가 확인된 것으로 보아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하며 마을을 이
룬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4. 가마뫼골 유적 1호 집터 및 출토유물, 유적 전경(京畿文化財硏究院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