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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남문인 지화문 현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옛사람이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였다. 비록 이런 천연의 요새지[天塹]인 성이 있

                  더라도 인화가 없다면 어떻게 보존하여 지키겠는가?”
                    수어사 서명응의 안내를 받으며 남한산성을 다 둘러본 정조가 신하들에게 한 말이다.



                  8) 독산성의 보개축 공사

                    1792년 7월에 독산성의 대규모 보수공사가 이루어졌다. 초가을에 내린 폭우로 성벽이 많이 허물
                  어졌던 것이다. 수원부사 이경무(李敬懋, 1728~1799)가 독산성에 올라 현장을 살펴보고 총융사에게

                  “독성산성이 이번 장맛비에 성첩이 거의 절반은 무너졌고, 산기슭 또한 사태가 많이 났다.”며 보수할
                  물자를 시급히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총융사도 수하 장교를 독산성에 보내 현장을 살펴보게 했

                  다. 보고문에 따르면 무너져 내린 곳이 12곳인데 그 길이가 101보, 너비가 108보나 되었다. 현장을 살
                  펴본 장교는 사태가 난 여러 곳 중에 현륭원이 훤히 보이는 곳이 네 군데나 된다고 보고했다. 상황을

                  파악한 총융사는 우선 사태가 난 곳에 빈 가마니로 덮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응급조처를 취하고,
                  공사를 시작하도록 지시했다. 독산성에 있는 쌀 100석과 돈 1천 냥을 보수하는 비용으로 지불하였다.

                    7월 25일부터 시작된 공사는 장용영의 장교들이 담당하였다. 독산성 중군 이한흥과 대솔 군관 민
                  광록에게 전적으로 위임하여 공사를 감독하도록 했다. 도령은 독산성의 장교 이정은이고 색리는 최

                  기조이며, 일패장은 독산성의 장교 김천일이고 색리는 이무대이며, 이패장은 독산성의 장교 이진복
                  이고 색리는 기성헌이다. 달포가 지난 9월 13일에 개축 공사를 마치고 성벽에 회를 발랐으며 20일에

                  는 기와를 덮고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전체 성벽 중에서 새롭게 쌓은 부분이 732보나 되었고, 보완하여 덧쌓은 부분이 272보였다. 수문

                  (水門)은 3곳을 새롭게 개축했고, 몸을 숨겨 사격할 수 있는 성가퀴 309보를 신축했으며, 지휘소 남
                  장대(南將臺)는 옛터에서 3척(尺)을 뒤로 옮겨 다시 세웠다. 시설을 보수한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설을 설치하고 기존 시설을 크게 확장했던 것이다.
                    실무 책임자인 독산성 중군 이한응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훈련원정을 비롯하여 대흥산성

                  중군, 갑산부사, 어영청 중군, 부호군, 선천부사를 지낸 그의 이전 이력을 보면 능력을 인정받았던 유
                  능한 무인으로 파악된다. 독산성 수축을 한 이한응은 이듬해 수원 중군으로 자리를 옮겼다.

                    독산성 공사에 수원유수부에 소속된 속오군을 비롯한 연인원 5,031명이 역사에 참여했다. 수고비
                  를 포함하여 개축에 들어간 물자는 경기도의 돈 2천 냥, 총융청의 1천 냥과 쌀 100섬 안에서 계산하

                  여 지급하였다. 앞에서 보았듯이 독산성의 전체 둘레가 1,004보(步)인데 새롭게 쌓은 부분이 732보이
      오산시사
                  고 보수한 부분이 272보이다. 이때 3분의 2 이상을 다시 쌓았던 것이다. 아울러 수문(水門) 3곳을 전

                  부 개축했으며, 309보에 이르는 성가퀴[타(垜) 혹은 여장(女墻)]를 전부 신축하여 기와를 덮고 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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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발랐다. 남장대 6칸은 안쪽으로 3자를 옮겨 건축하고 단청을 고쳤다. 남문루 8칸은 들보 위에 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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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고 문의 확쇠 1개를 새로 바꾸어 달았다. 서문루 8칸은 보수하고 기와를 덮었다. 북문은 좌우로
                  석축을 고쳤고, 성문 2개를 새로 달았다. 동문은 좌우로 석축을 고쳤고 성문 2개를 새로 달았으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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