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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보수와 화성 건설이 예고되었던 1793년 1월, 정조는 수원을 유수부로 승격하면서 경기 좌방                                      499
                  어영을 남양의 독산성으로 옮겨 설치하고, 중군이 겸하던 토포사도 방어사가 동시에 수행하도록 했                                            역사

                  다. 군대에서 좌(左)는 선봉을 뜻하므로 독산성은 수원의 선봉이라는 의미이다. 장용영에서 <내영과                                           /  유적
                  외영의 새로 정한 절목>을 정조에게 올렸다. 장용영 외영은 수원 화성과 현륭원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절목(節目) 중 독산성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유물
                    “독성산성은 이미 요새로서의 중요한 지역이자 또 군량을 쌓아둔 곳이니, 방어하는 도리를 소홀

                  하게 할 수 없다. 전에 총융청의 소관이었던 장초(壯抄) 2초, 아병 1초, 둔(屯)장초 68명, 군수보(保)
                  125명을, 본성의 소관 아래 모집해 들인 군관 30인, 수첩군관 130인, 아병 2초, 봉족군 400명, 별무

                  사 1,523명과 합해서 성을 수비한다는 명목으로 본성에 전속시키고, 그중 장초 2초, 아병 1초, 둔장초
                  68명, 군수보 125명은 본래 쌀을 납부하는 군인들이었으니, 그 납부한 쌀은 외영(수원부 관할)에서

                  받아 유치한다. ”
                    수원 신읍에 성곽을 쌓기로 결정한 정조는 신읍 근처에 둔전을 설치하고 성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농사를 시켜 군영의 비용을 마련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처럼 정조도 둔전 경영에 모범을 보였던 독산
                  성의 사례를 신도시 화성에서도 본받도록 했던 것이다.

                    1794년 1월, 정조는 팔달산에 올라 화성 축성을 선포하면서 수원부사 조심태에게 독산성 주변에 나
                  무를 심고 가꾸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독산성 중군이 산성에 부속된 마을 사람들 중에서 식목인

                  을 선발하고 이들에게 오로지 나무를 심는 일을 전담하도록 하였다.


                  13) 독산성과 무예의 표준화

                    효종이 승하한 지 꼭 100년이 지난 1759년에 사도세자는 효종의 북벌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무예신보』를 펴냈다. 15~16세부터 효종의 ‘원대한 뜻’을 계승하겠다며 창덕궁 후원에서 효종이
                  사용하던 월도와 철주를 들고 무예를 익혔던 사도세자는 1760년 초가을, 독산성을 찾았다. 요양을 위

                  해 온양 온천으로 가던 사도세자는 독산성에서 효종이 묻히려 했던 화산을 바라보고 수원읍성을 찾
                  아 하룻밤을 묵고 다시 독산성에 돌아와 군사들의 무예를 시험하고 본인도 활을 쏘았다.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1789년 가을, 아들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 강무당이 있는 화산으로 옮겼다. 이때 정조는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와 박제가, 장용영 장관

                  백동수에게 『무예도보통지』 편찬을 명해 이듬해 4월에 간행했다. 사도세자가 독산성에 올랐던 사실
                  을 주목한 정조는 1791년 독산성에 행차하여 지역 원로들을 만나고 사도세자가 활을 쏘았던 일을 재

                  현했다. 이처럼 수원읍성과 독산성은 효종과 사도세자, 영조와 정조를 연결하는 유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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