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오산문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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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VOL. 68 osan culture
나주향교의 명륜당. 사진 차상현
나주는 조선시대 전라도에서 2번째로 큰 고을이었 한 명륜당과 동재, 서재가 배치되는 형태를 말한
다. 나주향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향교로서 전라 다. 반면에 전학후묘는 이와 반대되는 배치이다.
남도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향교는 지방공립교육기관으로 설립되어 지방의 유
향교의 대성전은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생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조선 중기의 양식으로
5성(5聖), 송조 4현(宋朝四賢-주렴계, 정명도, 정 지어졌으며, 성균관의 대성전이 나주향교 대성전
이천, 주자), 우리나라 18현(十八賢-설총, 최치원, 을 참조하여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
황, 김이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 나주가 옛날에는 금성이었는데, 고려 태조는 금성
열, 송준길, 박세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나주 을 나주로 지명 변경했다. 금성관은 전라남도 유
향교의 특징은 전묘후학의 형태로 일반적인 전학 형문화재 제2호로서 나주목의 객사 정청이다. 객
후묘의 배치와 다르게 되어 있다. 이유는 공자 아 사란 지방 궁실로, 관찰사가 관할 구역을 순행할
버지 위패를 봉안한 계성사(중국의 5성-공자, 안 때 업무를 보던 곳이며, 중앙의 사신이 묵던 곳이
자, 증자, 자사, 맹자-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를 다. 지방 도읍지에 관아건물이 들어서면 중심축선
두었기 때문인데, 계성사가 있는 곳은 이런 배치 상에 동헌과 정문, 루문 등이 자리하고, 주변에
를 하고 있다. 전묘후학의 구조는 앞쪽에 공자를 육방관속의 건물과 내아들이 위치한다. 금성관 정
비롯한 5성과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을 모신 대 문인 망화루는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던 것을 2003
성전과 동무, 서무가 배치되고, 뒤편에 강학을 위 년에 복원했다. 목문화관은 나주가 고려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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