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전시가이드 2025년 11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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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하듯이 흰 물거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어둠에 갇힌 바다와 파도를 유추
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익히 알려졌듯이 서구에서 사진의 어원은 빛으로 그린 그림, 즉 '빛(phos)'과 '
그리다(graphos)'의 합성어이지만, 우리네 사진(寫眞)은 ‘참을 모사’한다는 의
미가 있다. 진실의 초월적 유사인 ‘참’은 무엇일까? 그것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혹은 물리적 외양을 넘어 실체 이면에 은폐된 것을 드러내는, 도에 가
까워 억지와 허위가 없이 직관적으로 감각되는 교감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창
남은 ‘교감의 상태’를 위하여 다양한 실험을 구가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
다. 너무 짧고 가쁘거나 너무 긴 숨은 참됨의 본질이 아니다. 더구나 예술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야는 아니다. 그 가름을 넘어 외양과 이면, 차안과 피안
을 가로지르는 사유와 그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 보는 측면이 있는 분
야가 더 적확하다. 이를테면 예술은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원론적
인 질문에서 시작해 작품이란 다양한 재료와 형식 실험을 통한 다소 이질적
이고 상반되는 대척점의 요소들-주체와 대상, 현실과 표상, 이미지와 개념 등
의 경계나 틈을 추슬러서 때론 시적으로 때론 환유적으로 아우르는 장이다.
창남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기억된 것과 상상된 것이공존하는
경계’에 집중한다고 토로했다. 설사 그것이 증감 효과를 노린, 허구의 맥락을
과장한다 하더라도 사진과 회화, 오브제의 부적절한 조합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펼쳐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몸과 마음으로 작품을 체험케 하며, 동시에 물질적 상상력이라는 ‘경계’의 영
역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경계’는 창남 작품을 독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키
워드이다. 바다와 대지가 만나는 지점이, 사진과 회화가 엮이는 지점이, 표상
과 상상력이 공존하는 지점이, 원본성과 복제품이, 작품으로서의 사진과 오브
제로서의 사진이, 실사 사진과 구축 사진이 공존하는 지점이 그렇다. 종종 사
진은 회화에 사용되는 캔바스 천에 인화되어 있어 그 경계를 흐리고, 나아가
사진 위에 회화적 질료가 얹어져 또 다른 세계를 꿈꾼다. 꿈은 꿈이되 바슐라
르식으로는 몽상이고, 이 또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속한다. 이 지점에서
물질적 상상력이 본격적으로 삼투된다. 대상을 형태가 아닌 질료로 파악한다
는 것은 시각적 차원의 인식을 넘어 대상의 근본적인 속성에 초점을 맞춤으
Harmony #18 93×143cm Acrylic on Pigment Print 2025
로써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다. (-중략-)
그의 사진/회화와 순수 회화의 화면에서 필획의 운용이 그렇게 격렬하지도,
과격하지도, 마티에르를 느낄 정도로 두툼하지도 않지만 그리 보이는 것은 아
마도 사진의 밋밋하고 얄팍한 평면 그 자체를 기억한 후속의 감각 때문일 것
이다. 옅은 단색이나 두세 개의 그러데이션 색조로 치환되었던 바다는 활기
위기와는 다르게 비바람 치는 칠흑의 혹독한 바다 환경에서 포착한 실사 사 찬 붓질과 질료의 물성으로 인해 이제 그 심연에 은폐되어 있던 격렬한 포효
진이라는 역설, 더 나아가 그 실사 사진을 기반으로 마치 분경을 만들 듯 사진 를 감지하게 한다. 정적은 깨졌다. 또 다른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이리 읽
자체를 오브제로 활용하여 사진의 진정성을 희석시키는 소위 메이킹 포토 또 을 수 있는 것도, 그것은 개념이 선행하지 않는 분명 물리적 현상이지만 우리
는 구축 사진을 만드는 역설. 사진의 역사적 흐름과는 별도로 그림인가 싶을 의 몸과 마음이라는 정신적 영역에 역동성과 창조성으로 투영되는 것이 바로
정도로 사진이 가진 고유한 특질을 최대한 억제하고 회화를 지향하는 역설 물질적 상상력이다, 매개자에 머물렸던 사진과 달리 사진/회화의 화면은 작
등등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바다는 단순한 감각적 풍경을 넘어 내적 풍경을, 가의 행위라는 과정을 증명하면서, 작가의 존재를 증언하고 있다. 또한 남겨
심상 풍경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순수와 연출, 사진과 회화, 구상과 추상, 현실 진 사진의 이미지 덕분에 그것이 단순히 비대상의 추상 혹은 추상표현주의적
과 초현실이 하나의 층위로 겹겹이 쌓이는 중층의 양가적 화면이 구현된다. 발로가 아님은 쉽게 간파되지만, 자연 속에 이미 추상이 내재하니 별반 중요
치 않다. 사진에서 보듯 이미 상호교감이나 공명을 전제로 그려진, 그래서 알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운 것도 비가시의 영역에 속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주 듯 모를듯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때론 정갈하게, 때론 혼탁하게 착종된
는 예가 아우라이다. 작품의 영혼적 기운, 영험 등으로 사용되며 예술 담론에 이 붓질 이미지는 재현과 추상을 떠나, 아마도 작가의 사진/그림에서 작가의
서 자주 거론되는 그리스어 아우라(Aura)는 본래 ‘숨’ 또는 임계점의 ‘거리’를 개입과 매개와 행위가 가장 적극적으로 작동한 부분일 것이다. 그런 행위의
의미했었다. 다소 시적이고 신비주의적이지만 ‘가깝고도 먼 어떤 것의 찰나 여파가 작가를 메이킹 포토와 순수 회화의 영역까지 밀어붙였다는 것은 일종
적인 현상’이었다. 이를테면 적정한 거리가 유지될 때 인간과 사물의 고유한 의 메소드 연기처럼, 배우가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등장
본질이 가장 뚜렷이 드러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확대 해석하자면, 시각 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방법론을 연상케 한다. 바꿔 말하자면, 작가가 바다를
의 한계를 긍정하는 것도 일종의 아우라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사진에서 파 찍거나 모사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바다와 혼연일체 되는 상태, 작가가 자연
도의 물거품은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악천후의 날씨와 칠흑 같은 어둠, 이 되고, 자연이 작가가 되는 상태가 일어났음을 현시한다. 바다는 물의 종착
그에 따른 제한된 빛 조건에 의해 바다는 점점 비가시 영역으로 잠식되어 간 지이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 아마도 후일 작가의 순수 회화를 찍은,
다. 그러므로 비가시적인(?) 바다를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어 줄 매개체로써 작품으로서의 사진을 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창남 작가의 경계에
파도의 흰 포말은 필요불가결하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바람의 실체를 대한 독특한 사유를 발견하게 된다. (※ 원문 일부 발췌·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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