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P. 104
화가 통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공산주의자들과는 정말 그 어떠한 일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인가?
개성공단 사업은 ‘햇볕정책’을 내건 김대중 정부의 치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대화는 이전 김영삼 정권 때보다 훨
씬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
장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 여세를 몰아 남한의 현대아
산 측과 북한의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는 2000년 8월 22일 개성공단 개발 합
의서를 체결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그 같은 일련의 공로들로 인해 그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김대중 정부가 합의한 개성공단 사업은 2003년 2월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
의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취임 4개월 만인 2003년 6월부터 즉각 개성공단
건설에 나선 노무현 정부는 1년 만인 2004년 6월 개성공단 시범단지 2만 8,000
평의 부지를 조성했으며, 다시 6개월 뒤인 12월부터는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 제품이 이른바 주방용품인 냄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남한의 자본과 기
술, 북한의 노동력이 결합된 첫 제품이라 하면서 그 냄비를 ‘통일냄비’라 불렀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북한 퍼주기’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일면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북한은 개성공단을 우리 측을 압
박하는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에 긴장이 조성될 때마다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 카드를 들이밀며 위협했다. 그것이 결
104 노규수의 사회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