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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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터지고 만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남북 간의 대화에는 서로가 쓰는
문법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할 정도의 골수 공산
주의 국가에 사회주의 체제다. 현대국가의 형태를 가진 중세왕국이라고 할 정도
로 김일성 가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나라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가족 3대’
의 말이 절대복종해야 할 어명(御命)으로 작용되고, 밥은 굶어도 빛나는 주체사상
을 잊으면 안 된다.
2003년 8월 대구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이
도로변에 설치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때 함께
악수하는 사진이 새겨진 플래카드를 “불경(不敬)스럽다”며 떼어내고 이를 사진
찍은 지방지 기자의 카메라까지 빼앗는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들은 도로변 가로수들에 걸려 있던 가로 6m, 세로 0.9m 크기의 플래카드를
조심스럽게 떼어낸 뒤 “장군님의 사진이 지상에서 너무 낮게 걸려 있는 데다 비
를 맞도록 방치돼 있다”며 주위에 있던 ‘남조선 주민들’에게 항의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높이에 걸고, 비가 오더라도 안 맞게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유다.
그 플래카드는 예천군농민회 등 지역주민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는 “북한 선
수단과 응원단을 환영하기 위해” 제작해 가로수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남북정
상회담 때 웃으며 악수하는 김대중-김정일의 사진을 플래카드에 넣으면 북한
선수단이 더 좋아할 것 같았고, 그래서 플래카드 환영 문구도 “북녘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로 했던 것이다.
이 항의 사건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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