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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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나 이름 없는 두 봉우리(519m, 527m)를 거쳐 대미산(大眉山, 678m)에 이르기까
지 네 봉우리가 펼쳐있다. 고운리는 바로 이 같은 일곱 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골짜기 분지다.
그 골짜기 산허리에 나와 친지들이 일군 자미원(紫微園)이라는 약초 농장이 자
리 잡고 있다. 작은 농장이지만 동쪽 대미산과 서쪽 적보산 기슭에 각각 한 곳씩
있다. 또 가장 깊숙한 시어골 골짜기인 석문봉 기슭에도 약초 묘목을 기르는 작
은 농장과 약초를 발효시켜 보관하는 저장소를 두었다.
자미원이란 우리 민족의 전통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주의 컨트롤 타워
다. 북두칠성이 호위하듯이 밤새도록 그 주위를 한 바퀴 돈다는 하늘의 중심이
다. 고운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곱 개의 산봉우리들이 마치 북두칠성 같은 느낌
이기에 나는 감히 농장 이름을 그렇게 명명했다.
천지를 창조한 신은 고운리 북쪽에 협곡을 열어 놓았다. 그 문으로 외부와 소
통하라는 뜻인 만큼 이 마을의 유일한 통로다. 여기 와서 안 것이지만, 영겁의
세월 동안 그 협곡으로 빠져나온 물이 고운천이 되어 내 고향 서울 구의동까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즉 그 고운천이 고운리 끝이자 중산리 입구에 이르러 중
산저수지가 되었고, 거기서 나온 중산천은 다시 석문동천에서 다른 지류들을 만
나 함께 달천(達川)과 남한강,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 서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결국 나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강 변을 떠난 뒤 30년 만에 한
강의 발원지를 찾아 나섰던 셈이다. 그저 찾아간 발원지가 아니라, 귀농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기에 그곳에 자미원이라는 약초 농장을 만들 수 있었다.
강물의 발원지는 늘 세상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이제부터 시어골에서 발원한
달천 지류는 또 어떤 이야기를 갖고 한강으로 흘러들어 갈 것인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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