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신구약 중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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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고 병원, 길, 학교, 다리등의 인프라를 그들을 위해 구축 해 주었던 현실성
때문이라는 추후 연구가 있다.
왕정국가→공화정국가(여러 사람이 다스리는 형식, 원로원의원들을 통해 집단
지도체제로)
→ 줄리어스 시저가 황제가 되려고 일어난다. 원로원 입장에서 독제자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시저의 측근인 브루스트를 통해 암살시킨다.
로마는 공화정을 원했으나 시저 때 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시저(=카이사르=가이사=황제라는 이름의 보통명사로 나중에 바뀌게 된다.)
시저는 황제가 되지 못하고 양 아들인 옥타비아누스가 3 두 정치 중 1 인자가 된다.
그 때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존엄한 자'라는 의미인 '아우구스투스'라는 권위를
부여 해 준다. (성경 =아구스도)
황제라는 명칭을 쓰지는 않았지만 추후 학자들은 황제와 비슷한 의미로 보고 1 대
황제를 옥타비아누스로 본다.
예수님이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하신다.
눅 2:1 절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가이사= 카이사르 = 황제 ,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원래 줄리어스 시저의 '성' (라스트 네임)이었는데 이 '성'이 황제라는 보통명사로
바뀐다)
1 대 황제의 명령으로 마리아와 요셉은 요셉의 고향인 다윗의 후손이므로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하려 하는데 그 때 예수님이 탄생하신다. 로마가 제국의로서의
첫 출발점인 시기에 바로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다. 로마제국은 앞서 제국과 비교
불가의 역대 최강국가가 된다.
헤롯대왕
로마입장에서 유대는 아프리카와 이집트로 갈 수 있는 다리와도 같은 전략적
요충지이나, 끊임없이 반란, 봉기, 혁명을 하는 골치 아픈 땅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다신교가 아닌 유일신을 믿는 유일한 나라였다. 그러므로 그 신앙과 정복자들의
신앙이 끊임없이 부딧히는 것이다. 그 예로 헬라시대 에피파네스와 부딧힌 마카비
혁명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독특한 유대를 위해 관용정치를 한다. 로마총독을
파견하여 정치와 군사권만 주고 나머지 내정과 종교는 대제사장에게
맡겼다.(이원집정체제) 그리고 또 하나 분봉왕제도를 만들었는데, 로마가 점령한
나라를 자신들이 직접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토착세력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그
분봉왕으로 로마는 헤롯을 선택했다.
헤롯은 로마에 살아보아 총독과도 친분이 있고 유대 전통을 알고 있으므로
제사장들과도 잘 지냈다. 동시에 로마에 절대충성의 인물이므로 골치아픈 유대를
효과적으로 통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헤롯대왕은 BC40 년~4 년까지 36 년간 로마 승인아래 로마 분봉왕으로 통치를
했다.(군사-총독, 헤롯-내정, 대제사장-종교)
헤롯대왕은 유대인으로 귀화한 에돔 출신이므로 유대인에게 환심을 사야했고,
로마인에게도 잘 보여야 했다. 그래야 권력이 튼튼하게 되므로
예루살렘 성전 건축(헤롯성전)을 하게 된다.(포로귀환 때 재건 된 스룹바벨 성전은
매우 형편없는 상황) 매우 큰 규모로 제사장 1000 명을 석공으로 훈련시켜서
지성소와 성소를 건축하게 한다. 기초 공사의 깊이만 45m . 후에 예수님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