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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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 새 관점 학파를 비판하는 학자들도 대부분 그것
은 인정합니다. 그들은 다만 그 틀 안에 개인주의적 율법 공로주의의 경향도 있었다는 것
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새 관점 학파는 우리들을 도와서 바울의
➀ 칭의론이 명백히 전개되는 역사적, 사회학적, 선교적 맥락을 더 잘 이해하게 했
습니다.
➁ 칭의론의 언약적 구조와 공동체적 평면, 즉 하나님의 백성 됨의 평면에 대한 이
해를 증진했습니다.
➂ 결국 바울의 칭의론도 기본적으로는 ‘언약적 율법주의’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
고 있음을 이해하게 하였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여자 교수 후커(M. D. Hooker)가 이
점을 처음 관찰했는데, 그 후로 많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때 우리는 의인이라고 선언(칭함)받지만, 그것을 신약
구원론의 종말론적 유보(구원이 ‘벌써 이루어짐—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음’)의 구조 속
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 때 받을 선언을 지레 받는 것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 때 온전히 받는 것입니다. 믿는 자 될 때 우리
가 얻는 의인의 신분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됨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언약적 율법주의’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에 ‘
진입’한 것에 해당합니다. 믿음으로 칭의 되고(죄 용서받고) 의인의 신분을 얻은 사람은 이
제 최후의 심판 때 칭의의 완성을 받을 때까지 자신이 ‘진입’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곧 설명하겠지만, 그 사람은 이중 사랑의 계명
을 지키며 살라는 요구로 오는 하나님의 통치를 계속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
택과 언약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진입’한) 이스라엘이
언약의 법들을 지킴으로써 그 관계에 ‘머무름’ 하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적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칭의론의 구조는 그의 은혜론과 성령론에
의하여 변형되어서 유대교의 ‘언약적 율법주의’의 구조와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 받은 자들,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된
자들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그 관계 안에 서 있게 된다’고 가르치지 않고, 도리어 ‘성령의
인도와 힘 주심을 받아’ 그렇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로마서 7~8장과 갈라디아서
5~6장에서 율법과 육신을 하나로 묶어 성령과 대조하면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서 있으려는 것은 결국 의를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죄를 지
으며(또는 ‘육신의 열매’를 맺으며) 죽음으로 나아가는 길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와 힘 주심을 받아 살 때 율법의 진정한 요구 (그리스도의 법)를 성취하며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의 칭의론은 구원이 ‘벌써 이루어짐—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음’의 구
조 속에서 유대교와 같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진입’하고 종말의 완성 때까지 그 관
계 속에 ‘머무름’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 ‘진입’과 ‘머무름’이 모두 성령(하나님의 은혜)
에 힘입어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는 데서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다른 모습을 갖게 됩니다.
바울의 이러한 칭의론의 구조를 우리는 새 관점 학파와 토론하는 가운데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가끔씩 우리가 믿는 진리도 그것을 비판하는 자들과 논쟁하면서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