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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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 편입될 수 있는가의 문제, 즉 교회론의 문제가 바울신학의 중심이다”라는 것입니
            다. 이러한 견해는 “바울신학의 중심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가,
            거기서 어떻게 의인으로 인정되는가 하는 것이고, 칭의론은 그것을 설명하는 구원론이다”
            라고 보았던 루터 이래의 전통적인 개신교의 견해와는 거리가 큽니다.




                  (3)      바울의 칭의 교리의 의미 축소


            세 번째, 그러다 보니까 바울의 칭의 교리의 의미가 축소된 것입니다. 칭의론이 이방인들
            을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시키기 위해서, 즉 이방 선교를 촉진하기 위해서 고안된 교리라고
            강조하다 보니, 그것이 바울의 구원론의 본질적 표현이라거나 중심이라기보다는 임시방편
            적 표현이고 부차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습니다.
            슈바이처(Schweitzer)가 그리스도 안에 내포되어 그와 함께 죽고 부활함, 즉 ‘그리스도—신
            비주의’를 바울 구원론의 중심으로 보고 칭의론은 이방 선교를 위한 부차적 논쟁용 교리였
            다고 보았듯이, 근래에 신약학자들 가운데 바울의 구원론의 중심은 칭의론이 근거하는 ‘법
            정적 속죄론’(the penal theory of atonement)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
            함’을 내용으로 하는 ‘참여 속죄론’(the participation theory of atonement)이라는 주장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것은 이 점을 강조한 샌더스(Sanders)와 여타 ‘새 관점’ 학파 학
            자들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바울의 율법/유대교 비판


            네 번째, 바울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율법을 ‘자신들의 민족적 특권을 보장하
            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는 점을 비판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호하기 위한 방호벽’으로 여기면서, 이방인들은 하나님
            의 백성이 될 수 없게 하는, 즉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으
            로 만든 것을 비판했다고 주장합니다.




                  (5)      칭의 교리의 후기 개발론


            다섯 번째, 칭의의 교리가 바울신학의 중심도 아니지만, 이것이 바울신학에 원래부터 있던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기에 AD 48(49)년쯤 안디옥에서 유대주의자들이 시내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받지 않고 정결의 법(특히 음식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유
            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하며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의 백성
            됨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를 합니다. 이 안디옥 논쟁을 전후하여 갈라디아의 교회에서
            유대주의자들이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요구하자, 비로소 바울은 이방인들
            도 ‘율법의 행위들’(시내 언약의 표징들을 행함)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그리고 그들
            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정당한 백성이 된다고 논증하는 칭의론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주장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칭의론의 후기 개발론은 그 교리가 바울신학에서 부차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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