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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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인간이) 우리의 율법 지킴 등의 선행에 의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
            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것을 믿음으로만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11~22절에서 그리스도가 그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유대인들과 이방
            인들 사이에 있었던 율법의 장벽을 허물어, 그리스도의 이 은혜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
            들이 함께 하나님께 화해되었고 서로에게 화해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몸, 교회 안에서 하나
            님의 한 백성, 한 가족으로 통합되었다고 새 관점이 강조하는 칭의론의 선교적, 교회론적
            의미가 설명되어 나옵니다.
            율법의 행위 없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만 의인 됨의 복음은 필연적으로 이방
            선교를 촉구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인되니까 인간들이 출생이나 성
            취로 내세울 수 있는 어떤 ‘공로’나 ‘이점’도 무의미한 것입니다(갈 3:28). 그러니까 칭의론
            에서 뭐가 더 우선합니까?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써 의인이 된다는 보
            편적 진리를 강조함(옛 관점의 통찰)이 기본이고(롬 1:16b: “복음은 어떤 믿는 자나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힘이다”), 거기서 이방 선교가 나올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믿는 이방
            인들도 믿는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진리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롬
            1:16c: “첫째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인에게도”)
            그러한 로마서 1:16의 명제를 따르는 것이 에베소서 2장의 논리 전개 순서가 아닙니까? 그
            래서 저는 제 서평에서 라이트(Wright)가 옛 관점의 통찰과 새 관점의 통찰을 통합하려는
            방식에 대항하여, 옛 관점의 통찰(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그것을 믿음으로만
            죄를 용서받고 의인이 된다는 보편적 진리, 2:1~10)이 우선하고, 새 관점의 통찰(그리스도
            를 믿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에서 통합됨, 2:11~22)을 그 귀결로 함축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는 「그리스도와 가이사」(한국에서는 2009년에 출간함)라는 책을 출판해 바울이
            그의 복음을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숭배와 강압 통치에 의식적으로 대항하는 식으로 형성
            했다는 라이트(Wright)와 리처드 호슬리(Richard Horsely) 등의 주장이 과연 옳은가를 점
            검하기도 했습니다.




                9)      결론


            새 관점의 주창자들이 칭의론의 선교적, 교회론적 의미에 집착하면서, 그것의 법정적 의미
            를 무시/경시한 것이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제 그들도 그 점을 자신들의 오류로 인정하
            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전통적인 칭의론의 옹호자들은 후자에 집착하면서 전자를 무시한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또 새 관점에 대한 토론은 우리로 하여금 종말론적 유보의 구
            조를 가지고 있는 바울 구원론의 한 범주인 칭의론이 새 관점의 주창자들이 그린 유대교
            의 ‘언약적 율법주의’와 구조적으로는 유사한, 그러나 신약의 새 요소인 성령론에 의거해
            조정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잘 이해하게 했습니다. 최근에는 새 관점의 주창자들
            과 옛 관점의 옹호자들 간에 상호 접근이 일어나고 있으며, 두 관점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라이트(Wright)가 그것들을 통합하는 한 방식을 제시했는데,
            저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관점에서 그들을 통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것을 제2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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