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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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
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1~26).
크랜필드(Cranfield)의 해석은 전통적인 것으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입니다. 이 해석의 요
점은 하나님의 의를 ‘죄를 벌주고 의를 상 주는 법정적 개념’으로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죽
음을 ‘우리 죄에 대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심으로써 그 진노를 풀어 버
리는 제사(propitiatory sacrifice)’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회개하도록 기다리면서 오랫동안 그들의 죄를 간과하심으로써 ‘그
분은 과연 죄를 벌주고 의를 상 주는 의로운 분인가?’ 하는 회의를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
렀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버리는 제사로 바쳐
지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증명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용서할 수 있는 근거를 마
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죄를 벌주는 하나님의 의와 우리를 용서하고자 하는 하나
님의 사랑이 만난 것이 십자가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죄에 대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벌 받게 하심으로써 자기 의를 증명하면서, 동시에 죄인들인 우리를 용서하고 의
인이라 칭할 수도 있게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이렇게 법정적 범주로 해석하는 것을 ‘형법적 대신주의’(penal
substitutionary theory of atonement)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크랜필드
(Cranfield)의 해석입니다.
케제만(Käsemann)의 해석은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그의 언약에 신실하심’으로 이해하
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의 징벌을 받음’이 아니라 ‘우리 죄를 씻어 버리고 덮어 버리
는 제사(expiation)’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죄 씻는 제사로 희생되게 해서 우리 죄를 씻어 버리게 하셨다. 그것
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즉,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약속을 신실히 지키심)을 보여 주시
고, 오랫동안 참아 온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케제만(Käsemann)의 해석입니다.
전통적으로 로마서 3:24~26을 해석함에 있어 주된 이슈는 거기 나오는 헬라어 ‘힐라스테
리온’(hilasterion)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진노를 풀어 버리는 제
사’(propitiation, propitiatory sacrifice)로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죄를 씻어 버리는, 또
는 덮어 버리는 제사’(expiation, expiatory sacrifice)로 이해해야 하느냐? 아니면 이 ‘힐라스
테리온’(hilasterion)이 70인경(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판)에서는 성전 지성소의 언약궤의
뚜껑을 지칭하는 전문어이니 그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성전 지성소의 언약궤의 뚜껑은
하나님의 어좌입니다. 레위기 16장에는 일 년에 한 번씩 대 구속의 날에 대제사장이 백성
의 죄를 다 안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그 언약궤의 뚜껑에 제물의 피를 뿌림으로써 지난 일
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모든 죄를 씻어 버려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얻어 내
는 대 구속의 날의 제사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 3:25에 나오는 ‘힐라스테리
온’(hilasterion)을 그 70인경에 따른 ‘힐라스테리온’(hilasterion)의 사용이라고 본다면, 로마
서 3:24~26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레위기 16장에 제정된 대 구속의 날에 성전에서 이루어
지는 속죄 제사를 종말론적으로 성취한 사건이라고 말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듯 ‘힐라스테리온’(hilasterion)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가지고 전통적으로 토론이 많았
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거기에 덧붙여서 새로운 이슈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첫째, 가장 기본적으로 여기서 ‘하나님의 의’라는 말이 죄를 벌주고 의를 상 주는 법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