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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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4:1~8 등), 그런 가르침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1~3에서 바울은 성령의 현상은 신비스럽게 보이며 우리를 황홀경에 빠지
게 하는 체험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디
오니소스 종교 등에서 황홀경에 빠지는 체험을 많이 한 고린도인들에게 바울은 그들이 ‘말
못하는 우상’(곧 생명 없는 목석에 불과한 우상)에 의해서도 황홀경에 빠진 경험을 한 것을
상기시키며, 모든 신비스럽고 황홀하게 보이는 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님을 강조한다. 사실
한국인들도 무당이 신 내림을 체험하고 황홀경에 빠져서 죽은 자들의 ‘혼’, 또는 귀신과 얘
기하며 굿하는 모습에 익숙한데, 그런 것이 신비스럽게 보인다는 이유로 성령의 역사로 여
길 수는 없는 것이다.
바울은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한 예수를 주로 인
식하고, 그에게 의지하며 순종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참과
거짓을, 악과 선을 분간하게 하고, 참되고 선한 것을 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윤리적 선택
의 갈림길에서 사탄이 가리키는 악의 길과 주 예수께서 가리키는 선의 길을 구분하여 인
식하게 하고, 우리의 육신을 유혹하여 죄를 짓도록 하는 사탄의 사주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주 예수의 길을 택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이리하여 우리는 ‘육
신을 따라 삶’으로써 음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음,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기, 분열, 이
단, 투기, 술 취함, 방탕 등 ‘육신의 열매’를 맺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삶’으로써 사랑, 희락,
화평, 관용, 자비,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것이
다(갈 5:19~23).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바울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이웃과 올바
른 관계를 갖게 하는 도덕적 자질들이나 그런 올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복들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성령의 열매’를 ‘의의 열매’라고도 부른다(빌 1:11). 이렇게 성령은 우
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의지하고 순종하여 거룩한 삶(살전 4:8), 의로운
삶(롬 8:4)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힘, 즉 하나님과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하고 그리하
여 하나님의 샬롬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의 힘이다.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은 산상수훈의 예
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성령의 영감과 힘을 빙자하여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고 이적들도
행한다고 하는 주장이 실제로 삶에서 ‘선한 열매’를 맺음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거
짓 선지자, 곧 진정한 성령의 역사를 힘입지 않은 자의 표징이라는 것이다(마 7:15~23). 거
룩한 삶, 의로운 삶, 선한 삶과는 전혀 무관한 ‘신령한’ 체험, 즉 뒤로 넘어지게 하고, 짐승
같이 울부짖고, ‘금이빨’을 만들어 준다는 등의 체험만 추구하는 한국의 성령 운동은 성경
적 성령론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행위대로의 심판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준비로, 우리가 위 제3장 ‘6. 하나님
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적 통치’에서 이미 살펴본 것을 되풀이하며 우리의 구원
이 전적으로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새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신 것
과 그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의인이라 칭함 받아 구원의 첫 열매를 받게 된 것만 하나님
의 은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종말에 최후의 심판석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우리의 칭의가 완성되어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
이고, 지금 칭의의 현재 단계에서 ‘의의 열매’를 맺는 삶도 오로지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으
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전 과정이 이렇게 전적으로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니, 우리
는 그것을 오로지 믿음으로 덕 입는 것인데, 그 믿음 자체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