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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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시고, 자신의 우편으로 높이셔서 자신의 주
            권의 대행자로서 자신의 영(성령)의 힘으로 우리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가게 하시며, 우리
            에게 성령을 주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즉, 하나님의 통치)를 계속 받으며 사는 ‘의
            인’이 되게 하신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즉,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순종하여 날로
            더욱 거룩하고 사랑이 풍성한 사람들이 되게 하신다.”
            누가 제게 칭의의 현재 단계에 대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 ‘칭의란 의인이라 선언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됨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종말의 최후의 심판에서 완성될
            것이므로, 그때까지 그 회복된 올바른 관계 속에 계속 서 있음이 구조적으로 요구된다’고
            했는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계속 서 있음’이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앞에서 이것에 대해 설명했는데(3장 5항목을 보시오), 다시 한 번 더 쉽게 설명해 봅시다.
            우리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버지 또
            는 왕 노릇 해 주심에 의지하고 순종하며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칭의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됨을 의미한다고 설명할 때, 그 말은 곧 하나님의 나라로(하나님의 통
            치 아래로) 이전됨을 의미한다고 부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계속 서 있는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삶, 하나
            님의 법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통치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
            행하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함이라고 가르치
            며, ‘하나님의 법’을 ‘그리스도의 법’이라고도 하고, 그 내용을 이중 사랑 계명으로 설명합
            니다(고전 9:21; 10:31~33; 갈 5:14; 6:2; 롬 12:1~2과 13:8~10 등).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올
            바른 관계 속에 계속 서 있는다는 말은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요구한 이중 사랑 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마 22:34~40/막 12:28~34/눅 10:25~28).
            우리는 매일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이웃을 속이고, 억누르고, 해
            코지하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라는 사탄의 통치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을 사랑하라(곧 이중 사랑 계명을 지키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을 것인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이 순간마다 성령은 우리에게 “저 길은
            사탄이 제시하는 길이고, 이 길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하시는 길이다”라고 깨우쳐 주
            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아빠 노릇 해 주심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할 수 있
            는 믿음과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이러한 인도하심과 힘 주심을 덕 입어(즉, ‘성령을 좇아’—롬 8장; 갈 5장)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면, 즉 ‘그리스도의 법’(이중 사랑 계명)을 지키며
            살면, 우리는 ‘의의 열매’(빌 1:11; 곧 성령의 힘 주심에 의해 맺는 ‘성령의 열매’, 갈
            5:22~23)를 맺어 감으로써 우리가 과연 의인으로 칭함 받은 자(의인의 신분을 얻은 자), 하
            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는 자, 의인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 이런 질문을 한 분이 있습니다. “바울의 칭의론에서의 ‘의’와 ‘의의 열매’를 맺으라고 할
            때의 ‘의’, 그리고 마태복음 6:33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예수의 말씀
            에 있어서의 ‘의’가 같은 말입니까?”
            마태복음 신학과 바울신학은 많이 상반된 것같이 보입니다. 마태복음은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는 것 같고, 바울신학은 그것을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과 15장을 보면 예수도 자신이 이스라엘만을 위해서 보냄 받았다고 말하고,
            제자들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복음 선포하도록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선교해야 한다는 바울의 소위 ‘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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