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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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우리의 영성을 심각히 왜곡하고 있습니다. 전통 신학이 말하는 ‘성화’가 사실은 칭의의
현 단계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은혜로/믿음으로 이미 받은 칭의가 최후의 심
판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의식하여, 칭의 된(의인이라 칭함 받은) 자로서 의롭게 살려
고 더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화’를 칭의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칭의 뒤에 오는 구원
의 한 단계로 이해하면, 우리가 이미 칭의를 받았으니 설령 ‘성화’가 부족하여 장차 하늘에
서 상급을 못 받아도 최소한 구원은 이미 확보했으므로 그것으로 되었다고 자만할 것입니
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의 삶에서 ‘의의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것
은 빤한 이치입니다.
이런 왜곡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관점
에서 설명해야 합니다. 전통 신학의 구원의 서정론에 근거하여 칭의와 성화를 서로 구분되
는 구원의 두 단계들로 이해하기보다는, 칭의를 하나님 나라에로 ‘진입함’, 하나님 나라 속
에 ‘서 있음’(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기),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완성을 받기’라는 구
원의 전 과정을 총칭하는 하나의 범주로 이해하면, 윤리적 요구, 즉 의로운 삶에 대한 요구
가 ‘칭의’에 구조적으로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외에 또 하나의 이점이 있는데, 전통 신학의 성화론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 윤리, 곧 개인
적인 경건하고 정결한 삶(어떤 사람들에게는 음식 가림<주초 삼가>, 제사 안 지내기, 성적
순결 등에 신경 쓰기, 좀 더 양식 있고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겸손, 정직, 사랑 베풂을 위
해 노력하기)을 이루는 일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반면, 칭의를 하나님 나라의 범주로 이
해하면 칭의의 현재적 과정(전통 신학에서 말하는 ‘성화’),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의
윤리적 요구가 사회윤리를 포함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칭의를 하나님 나라의 범주
로 이해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실현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입
니다.
바울은 그의 칭의론의 복음을 전개함에 있어 그 절정에 이르는 로마서 8장에서 피조 세계
전체가 썩어짐의 노예가 되어 울며 탄식하고 있다면서,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어 피조 세계
전체가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로부터 해방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칭
의론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인간론적·구원론적 표현으로 이해하면 우리가 개인적
으로 의롭게 살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전 사회적, 전 세계적, 전 우주적인 영역들에서 하나
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늘 ‘의인으로서 사는 것’은 실
제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사는 것으로써 이 사회에 하나님 나라의 의와 화평(샬롬)
이 이루어지도록, 더 나아가 온 피조 세계가 갱신되도록 염원하고, 우리 개개인이 각자의
소명에 따라 그것을 위하여 감당해야 할 역할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9.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칭의/구원의 복음의 사회적, 선교적, 문화적
의미
칭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의 칭의의 근거
가 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도 하나님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대속의
제사로 십자가의 죽음에 넘겨주심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 속죄 제사를 덕 입어 칭의 됨(
곧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들어감)을 얻게 하는 수단인 믿음도 성령의 은
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며(롬 10:9~10과 고전 12:3; 빌 1:29), 우리가 계속 그 올바른 관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