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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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칭의와의 관계
성화의 과거는 칭의의 과거, 즉 ‘믿음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기/하나님의 통
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 되기’와 같고, 성화의 현재는 칭의의 현재, 즉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며 살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칭의의 현재를 의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규정하듯이(갈 5:22~23; 빌 1:11), 마찬가지로 성화의 현재도 의의 열매 맺는
삶으로 규정합니다(롬 6:19, 22; 살전 3:12~13<사랑의 증가>; 4:3~8). 앞서 인용한 최후의
심판 때 완성되는 성화에 관한 데살로니가전서 3:13의 말씀은 여러 곳에서 바울이 최후의
심판 때 완성되는 칭의를 말할 때 쓰는 문장 형식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입니다(롬 5:8~10;
8:32~34; 고전 1:6~9, 빌 1:10, 11; 2:15). 그러니까 바울의 ‘성화’ 언어의 사용법들은 칭의의
사용법들과 일치하며, 그들은 둘 다 신약 구원론의 믿음/세례로 ‘이미’ 첫 열매 받음 ‐ ‘그
러나 아직 완성받지 않음’의 구조, 즉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음(과거), 구원을 받아 가고 있
음(현재), 그리고 종말에 구원의 완성을 받을 것임(미래)의 구조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칭의의 언어와 성화의 언어를 동의어로 쓰며 구원의 세 단계(과거, 현재,
미래)의 전 과정에 공히 적용합니다. 칭의 다음에 성화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둘은 같은
실재를 말하는 다른 그림 언어들(metaphors)입니다. ‘칭의’는 죄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
함, 그리하여 하나님의 징벌(진노)을 초래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구원을 그러한 죄의 문제
를 해결하는 것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쓰는 그림 언어로서 법정적 뉘앙스를 더 강하게 나
타내는 반면, ‘성화’는 죄를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세상의
오염으로 보고, 구원을 그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쓰는 그림
언어로서 제의적(cultic) 뉘앙스를 더 강하게 나타내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의적’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또는 예배 의식(cult, rite)과 관련이 있다’는 것
입니다. 가령 고린도전서 6:11에서 바울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 그의 주권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성령을 받았으며 “씻김을 받고, 성화되었으며,
칭의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 ‘씻김을 받고, 성화되었으며’는 성화의 부정적인 뜻(세상
으로부터 분리되고 정화됨)과 긍정적인 뜻(하나님께 바쳐짐)을 나타내는 두 짝들로서 함께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되어 하나님께 헌신되었음’을 뜻합니다.
그것을 바울은 여기 또 다른 그림 언어로 부연하는데, 그것이 ‘칭의 되었다’입니다. ‘칭의
됨’은 성화의 두 짝들에 각각 상응하는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됨’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이렇게 성화와 칭의는 사실상 동의어들입니다. 칭의 다음에 성화가 일
어나는 것이 아닙니다(여기 고전 6:11에 ‘칭의’가 도리어 ‘성화’ 다음에 나오는 것에 유의하
십시오!). 둘은 세례 때 함께 일어납니다. 세례 때 우리가 받는 구원을 ‘죄(책, guilt)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됨’이라는 관점에서는 ‘칭의’라고 하고, ‘죄(오염) 씻음
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쳐짐’으로 볼 때는 ‘성화’라고 합니다. 그들은 둘 다
우리가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됨, 그의 거룩하고 의로운 백성 됨
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칭의’는 유대주의자들의 율법 지킴에 대한 요구에 맞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범주입니다. 즉, 복음을 모든 사람이(이방인들까지도) 율법의 행
위 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덕 입어 죄 용서를 받고 하나
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되어 ‘의인’ 되고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
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힘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주의자들과의 논쟁
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로마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3장 등에 ‘칭의’가 현저히 나타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