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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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가 주이시다!”라고 고백하게 하고(고전 12:3) 하나님을 ‘
            아빠’로 부르게 하는데(롬 8:15), 그 고백으로 우리가 성령 받았음이 확증되어 우리 머리에
            물 퍼붓는 의식으로 그 사실을 극(劇)으로 표현합니다. 그러한 세례를 받은 이후 성령은 우
            리로 하여금 평생 동안 ‘아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
            며, 하나님의 ‘아빠’ 노릇 해 주심에 의지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는 의인
            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가치판단과 윤리적 선택의 순간마다 사탄의 통치를 받느냐, 주 예수 그리스
            도의 통치를 받느냐의 갈림길에 놓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육신’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
            금 자신의 뜻을 따르도록 합니다. 여기서 ‘육체’ 또는 ‘육신’(flesh)은 우리의 몸뚱이를 말하
            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자기주장 하려는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가리키는 말입
            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우리 자신을 자신의 주체로 생각하며, 우리 자신의 자원(지혜와 능
            력)으로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꾀하려는 우리의 ‘육신’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통치를 받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육신’을 재물(맘몬), 권력, 쾌락 등을 미끼로 이용하여 시험합니다. 예수께
            서 맘몬을 가장 위험한 우상으로 하나님과 대조하였으니(마 6:24; 눅 16:13), 그리고 오늘
            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파괴력이 큰 우상이 그것이니, 그것을 예로 들어 설명해 봅
            시다. 사탄은 돈을 많이 벌어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확보해야 한다고 우리의 ‘육신’을 자극
            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욕구를 따라 사탄의 이러한 사주에 순종하면, 우리는 자연히 이웃
            을 착취하게 됩니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이웃에게 속임수도 쓰고, 노임도 제대로 주
            지 않으면서 노동을 착취하고, 불량품을 만들어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기도 하고, 부실 공
            사도 하고, 뇌물도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불의를 행하여 갈등을 낳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
            금 고난을 받게 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잃게 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불의와 갈등과 고난
            들이 ‘육신’을 따라 사탄의 통치를 받는 삶의 열매입니다(‘육신의 열매’, 갈 5:19~21). 이렇
            게 ‘육신’을 따라 사탄의 통치를 받는 삶은 죄를 짓고 죽음(의 증상들인 고난들)을 확대하
            는 삶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법, 즉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의 이중
            사랑 계명(마 22:34~40/막 12:28~34/눅 10:25~28)을 지키라고 요구하심으로 우리를 통치
            하십니다(고전 9:21; 10:31~33; 갈 5:14; 6:2; 롬 12:1~2과 13:8~10 등). 윤리적 선택의 순간
            에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의 영인(롬 8:9~11) 성령은 우리로 하여
            금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피는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의 ‘아빠’ 노릇 해 주심
            을 믿고 의지하고(하나님 사랑), 이웃을 우리 몸같이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주’ 예수 그리스
            도의 통치를 받으라고 일깨워 줍니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참조. 요 14:16;
            15:26; 16:14).
            물론 이웃은 전혀 고려하지 말고 그들에게 좀 못된 짓을 해서라도 더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확보하라는 이 세상의 정신(ethos)과 삶의 방식(곧 사탄의 통
            치)을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 사랑 계명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노임도 제대로 주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 정당한 이익만 남기고, 좋은 자재
            를 써서 튼튼한 건물도 짓고, 법규에 맞추어 안전하고 공해 일으키지 않는 공장을 짓는 등
            의 방식으로 사업을 하다가는 이 세상의 방식으로 사업하는 다른 사업가들과 어떻게 경쟁
            하나? 그러다가 내 사업이 망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정신과 삶의 방식을 따라 결국 사탄의 통치에 순종하고자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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