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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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또는 너
            희 지체를 성화를 위하여 의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라).


                     20~21      전에는 죄의 종이 되어 의와 무관한 자들이었고, 너희가 부끄러워하는
            열매를 맺고 결국은 사망을 얻었다.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또는 성화를 위한) 열매를 맺는다.


            여기 19b절에서 우선 바울이 죄를 ‘부정’(성화의 언어)과 ‘불법’(칭의의 언어)을 함께 써 지
            칭함으로써 그것들이 근본적 동의어임을 암시하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그러고는 19b~22
            절에 걸쳐서 죄의 종노릇함과 의의 종노릇함을 대조하면서, 전자의 결과를 ‘불법에 이름’
            이라고 칭의의 언어로 지칭하는 것으로 시작하되(19b), 결국 ‘부끄러움의 열매’와 ‘거룩함
            의 열매’라는 성화의 언어를 강조하는 것(19c~22)에 유의하십시오. 이 본문의 대조를 더
            명료하게 요약하면,


                  ■      19b 죄의 종노릇        ‐ 불법의 열매
                       ■      19c 의의 종노릇       ‐ 거룩함(성화)의 열매
                  ■      20~21 죄의 종노릇         ‐ 부끄러움의 열매
                       ■      22 하나님의 종노릇          ‐ 거룩함(성화)의 열매


            20~21절과 22절은 ‘부끄러움의 열매’와 ‘거룩함의 열매’ 둘 다 같은 의식/의례적 언어, 즉
            성화의 언어로 되어 있어 완벽한 대조의 짝을 이루나, 19b절과 19c절은 ‘불법의 열매’와 ‘
            거룩함의 열매’가 각각 법정적 언어와 성화의 언어로서 범주의 혼란을 일으키는 대조의 짝
            을 이루고 있습니다. ‘불법의 열매’는 ‘의의 열매’와 짝을 이루어야겠지요. 그럼에도 바울이
            19c절에서도 22절에서와 같이 ‘거룩함의 열매’를 쓰는 것은 우리가 의/하나님의 종노릇하
            여(‘의의 열매’를 맺어 감으로써) 궁극적으로 ‘거룩함의 열매’를 맺는다(즉, 성화를 이룬다)
            는 것(전통적인 구원의 서정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성화론)을 말하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19b절에서 ‘부정’(성화의 언어)과 ‘불법’(칭의의 언어)을 함께 써 죄를 규정함으로
            써 ‘부정’(성화의 언어)과 ‘불법’(칭의의 언어)이 동의어임을 암시한 바울이 ‘거룩함의 열매’
            맺음과 ‘의의 열매’ 맺음도 동의어로 보고, 구원의 현재 단계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다 적절하게 상황화시켜 가르치기 위해 그 성화의 언어를 강조하고자 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바울이 칭의와 성화를 구원의 서정의 앞뒤 단계들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그
            것의 불법성에 초점을 맞추는가, 아니면 그것의 부정성에 초점을 맞추는가에만 차이를 갖
            는 동의어들이라고 여겼다는 것은 그의 최후의 심판(칭의의 언어)과 관련해서도 관찰할 수
            가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을 ‘하나님의 최후 심판석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온전히 해방됨’으로 생각하여 칭의의 완성으로 표현하는데(롬 5:8~10; 8:32~39 등), 데살
            로니가전서에서는 같은 생각을 피력하면서도(1:10; 5:9~10), 동시에 성화의 완성으로도 표
            현합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
            에서 거룩함에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참조. 3:13; 5:23). 그런데 또 이 두 곳
            들(살전 3:13; 5:23)에 ‘흠이 없음’(아모모스, amomos)이라는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 쓰이
            는 언어(즉, 성화의 언어)를 쓰지 않고, ‘책망할 것이 없음’(아멤프토스, amemptos)이라는
            법정적 언어(칭의의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한글 성경은 전자로 번역하여 부정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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